-번역자 정리:
PICS논쟁은 "디지털-자유주의자"들과 사이버-활동가들을 분리시켰다.
자유주의자들은 PICS의 사용이 표현의 자유에 대한 침해를 불러올것이라는
예측에도 아랑곳없이 상거래를 확장시키고, 편안하고 청결한 인터넷을
제공한다는 고상한 말로 시민들을 현혹시킨다. 필자인 Joshua의 주장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자유로운 표현'문제를 수정헌법의 "표현의 자유"로 국한시키는 것은 복잡한
미디어 규제에 대한 이해의 폭을 좁히게 될 것이다. 즉, 규제를 정부검열에만
한정시켜서는 안된다.
2)1의 측면에서 PICS는 우리의 기존 정치풍토(디지털-자유주의)에 힘을얻어 기술의
중립성이라는 선전효과를 내게 된다. 이는 인터넷의 상업화와 맞물려 인터넷의
자유로운 표현(불쾌할 지도 모르는)에 제갈을 물리는 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CDA가
성적 표현에 국한되었다면 PICS는 모든 종류의 물질에 광범위한 규제의 활용을
가져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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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shua Micah Marshall은 왜 웹의 최신 등급시스템이 CDA보다 더 위험할지도
모르는지를 설명한다.
*출처:http://www.feedmag.com/html/feedline/97.09marshall/97.09marshall.html
document.
지난해 6월 11일, 펜실베니아의 동부지구 연방법원은 본질적으로 CDA는 헌법에
위배된다고 선언하는 획기적인 결정을 내렸다. 이는 한해 지나 대법원에 의해
지지되는 전례를 남겼다.
공식 서류부분에서, 우리는 세 판사의 각각의 판결문을 공표했고, 그 결정에
논평하기 위해 수많은 전문가를 방문했다.(L.A. Times 칼럼리스트 Gary Chapman,
상원의원 Jim Exon, The New Republic의 Jeffrey Rosen을 포함하여)
인터넷 세상의 주민들과 산업계의 거인들은 지난 6월 대법원이 Communications
Decency Act(통신품위법)를 뒤집었을 때 함께 들떴었다. 하지만, 투쟁의 끝처럼
보였던 것은 제대로 된 시작임이 드러나게 되었다. CDA의 소멸은 인터넷 표현의
제한을 둘러싼 논쟁의 끝이 아니었다. 그것은 (논쟁을) 훨씬 더 복잡하게
만들었다. 짧은 시간동안, CDA에 대한 느낌-좋은 반대는 진부한 정치현실들이
온라인 세계에서 적용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쉽게 믿도록 하였다. 그리고, 최고
경영자들, ACLU 법률가들, 아주 활기찬 해커들이 동일한 선의 전투를 수행하는
행복한 일가가 될 수 있음을 믿게 하였다. 그러나 오늘날 그 거대한 진영아래에 는
강력한 월드 와이드 웹 컨소시엄 자체의 인가를 가져온 새로운 산업기준을
둘러싸고 의견불일치가 커지고 있다.
CDA를 패배시키게 했던 동맹은 지금 PICS(인터넷 내용 선별을 위한 플랫폼)라
불려지는 것으로 인해 쪼개져 분리되고 있다. PICS는 인터넷 내용에 등급부여를
요청하는 새로운 인터넷 프로토콜로, 인터넷 서퍼들과 서비스 제공자들이 인터넷의
셀 수 없는 유해함으로부터 불쾌함을 느꼈던 것들을 정확하게 차단하도록 하는
것이다.
표면적으로 그것은 아이들과 가족을 위해 인터넷을 안전하게 만드는 문제를
우아하고 나무랄데 없이 해결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많은 이들은 그것을 금방
해결책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그밖의 사람들은 PICS가 모든 비트에 철저한
정부검열과 같이 지독한 영향을 미칠지도 모른다는, 또 하나의 생각을 가지고
있다. 냉전 시대의 "적화의 위협"처럼, CDA의 위협은 그렇지 않았더라면 다른
후원자들에게 책임이 있었던 당파성을 통합하는 측면-효과를 가졌다. PICS논쟁은
그러한 동맹이 사실은 얼마나 일시적이었나를 명확하게 했는지도 모른다. 또한 이
논쟁은 소위 "디지털-자유주의"의 핵심에 모순점 중 하나를 명백히 했다:
정부에 의해 이행되지 않는 한, 표현의 자유에 대한 규제를 기꺼이 받아들이려는
의향이 그것이다.
인터넷 제어에 대한 괜찮은 공공 정책을 정밀히 만드는 것이 아주 어려울 수 밖에
없는 한가지 이유는 인터넷이 실제 세계에서 정보를 분리하는 셀수없이
부수적이지만 중요한 방법들 모두를 제거하기 때문이다. 플레이보이 잡지가 잡지
가판대위가 아닌 레지스터뒤의 작업대 위에 있다는 사실; 다양한 지하의 행동들이
오직 우리의 주요한 도시들의 깨알같이 촘촘한 부분들에서만 발견될 수 있다는
사실등등.
인터넷 상에서 우리가 정보를 분류하는 이러한 구별이 어렵고, 암묵적이며, 거의
의도하지 않은 각각의 방법들은 종종 그들의 실세계에 맞먹는 것보다 훨씬 더
직접적이고 강제적인 방법에 의해 명백히 재구성되어짐이 틀립없다.
PICS의 지지자들은 본래부터 무해한 V-칩의 인터넷 버전과 유사하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오직 당신만이 자신이 볼수 있는 것을 검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은 단지 그러한 자율-규제가 좀 더 광범위한, 국가-강제의 검열을 막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여기에 핵심이 있다. 표현의 자유를 위한 싸움에 포로가 되지
않음으로써 인터넷 시민 자유주의자들은 전체적인 공공 토론으로부터 자신들을
빠트리는 위험을 무릅쓰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지 않는 것들에 대해.
그러나 V-칩 은유는 오도된 것이다. 대개 PICS가 묘사되어질 때, 개인이나
부모들은 그들이 불쾌한 것을 발견하는 것에 관계없이 성적, 폭력적, 정치적인
어떤 종류의 표현물을 차단하기 위해 그들의 웹 브라우저를 설치한다. 그러나
PICS는 이러한 설명문이 함축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가변적이다. PICS 프로토콜을
사용하게 될때, 여과의 이러한 유형이 조직의 단계에서- 고용인, 인터넷 서비스
제공자 혹은 어떤 경우에 정부조차-사용되기에 수월하다.
V-칩으로 당신은 보길 원치 않는 것을 선택한다. 그러나, PICS로는 그런 선택이
마음에 드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PICS의 설계자들이 이런 가능한 쓰임들에
답하게 될 때, 그들은 단지 PICS가 중립적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부모에게 권한을
부여한다는 현대적인 수사학으로 기술을 묘사한다. 하지만, 실제 PICS는 몇몇의
상상할 수 있는 비판에 기반한 검열의 가능성을 노출시킨다: anti-cat language,
promiscuous use of the phrase "socially-constructed," or even just Spice
Girls fan sites.[1]
PICS가 가진 또다른 문제점은 더 방심할 수 없는 것이다: PICS 세계에서는 당신이
보고 있지 않은 것들을 좀처럼 알수 없다. 당신의 브라우저는 PICS를 통해 크고
붉은 "X"표가 있는 사이트나 링크는 전달하지 않는다. 당신은 틀림없이 전혀
그것을 볼수 없을 것이다. 이것이 참으로 오웰리안의 상상을 휘젖도록하는 PICS의
일부분인 것이다. 현실세계에서, 학교위원회는 실제로 허클베리 핀을
금지해야는지를 투표에 붙이는 우스꽝스럽게 보이는 짓을 해야만 한다. 그러나
PICS 환경에서 불쾌한 물질은 보이지 않는 기술의 손길을 통해 간단하게 현실의
존재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최악의 상태에, PICS는 좀더 걱정스러운 검열의
형태를 가능하게 한다. 왜냐면 그것은 너무나 흔적이 없어서 간파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PICS논쟁이 밝혀낸 것은 인터넷 산업계의 거인들과 활동가 그룹들의 이익이 사실은
얼마나 다른가라는 점이다. CDA에 맞서 싸우는 동안 그러한 분열은 분명치
않았거나, 단지 무시되었었다. 그러나 현재 명확하게 보이는 것은 Netscape,
Microsoft같은 산업계의 리더들이 정부 규제에 맞섰을 때 표현의 자유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라는 점이다. 우리는 종종 두 개가 연관되었지만 구별되는 두가지
개념들을 혼합한다. 산업계의 리더들이 PICS에서 가능성을 찾은 것은 그것이
인터넷 상거래의 세계가 미국내 다양한 구매자측면에서 인터넷의 성장을 해롭게 할
수 있는 수많은 문화-전쟁에 대한 논쟁을 효과적으로 피해갈 수 있도록 하기
때문이다.(그리고 표현의 자유나 문화적 관용에 대한 미국식 기준을 공유하지 않는
다른 나라들에서 조차도) 전자 상거래의 성장은 깨끗하고, 편안하며, 예측가능한
인터넷을 요구한다. PICS는 그렇게 웹의 위생화된 비젼을 현실에 한발짝 가깝게
가져온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그림을 활동가와 산업계의 유형이 선한 이들이나 악한
이들인 전통적 역할로, 고상한 이상을 그르치는 상업으로 그리지 않아야만 한다.
확실하게 경영가와 활동가들은 그들 자신의 독특한 이익들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현실의 이야기는 좀더 복잡하며, 그 문제에 대해서는, 좀더 냉정하다. PICS-유형의
해결에 대한 지지는 진부하고 케케묵은 기업의 회의실에서 나오지 않는다. 그것은
오직 치명적인 규제의 유일한 원천으로서 정부에 종종 근시안적 포커스를 맞추고
기술적 해결이 본질적으로 정치적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는 거의 무한한
자신감을 가진 사이버-활동가들과 인터넷 권위자들로부터 나온다.
모순적인 것은 인터넷 자유주의자의 윤리가 가장 영향력있는 결정자의 일부로
하여금 처음에 연방정부가 시도했던것보다 훨씬 더 해악적일 지도 모르는 기술을
포용하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CDA는 정부가 상대적으로 좁은 범위의-우선 성적인-
컨텐츠를 규제하도록 허락해주었다. 그러나 그러한 위치에서 CDA의 반대자들은
모든 종류의 물질에 규제가 가능하게 하는 라벨링 기술을 만들었다.
하버드 법대 교수이자 사이버-법률 전문가인 Lawrence Lessig은 현재 이러한
케이스만을 담당하고 있는 많은 법률 교수중 한사람이다. 레식은 최근에 나에게
많은 인터넷 활동가들이 인터넷상의 "상거래에 대한 장기간의 이해관계가 정부의
장기간 이해관계과 마찬가지"라는 점을 알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레식의 관점에서,
"정부와 상거래 둘다 그들이 누구이고, 어디에서 왔는지 당신이 아는 인터넷을
원한다... 당신은 그들에 대한 특징을 알기에 한 공간에 그들을 묶어둘수 있고
다른 곳으로 그것들을 가져올 수 있다." 정부가 개개의 위반에 대해 벌금이나
처벌과 같은 전통적 계산으로 인터넷을 쉽게 규제할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 충분한
것이다. 하지만 정부가 상거래로, 가장 위태롭게는, 코드를 기술하는 이들과 함께
일제히 기능하게 될 때, 당신은 정부가 독립적으로 수행할 수 있던 것보다 훨씬 더
침투적이고, 전체적인 규제의 유형을 가질 수 있다.
"사이버-권리"에 대한 이러한 이야기를 너무나 거품같고, 상류계층이나 쓰는
디지털 방식의 고상함-부유하고 할 일없는 값싼 행동주의-이라고 깨끗이
잊어버리기 쉽다. 그러나 사이버스페이스상의 이러한 싸움들은 우리의 정치적
문화에서 좀더 일반적인 조류들을 가리킨다. 그들은 오직 정부만이 규제나,
필터링, 정보에 대해 치명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으로 보여지는 정치 풍토에서
표현의 자유에 대한 우리의 집단적인 언급이 얼마나 힘을 잃어가고 있는지를 보게
된다.
현실적으로 그것이 귀착하는 바는 우리가 표현의 자유(free speech)와 자유로운
표현(free expression)사이의 차이를 무어라 불러야 하는지 모르는 것이다. 전자는
폭이 좁고 법률적이며, 정부의 행위에 대한 제한에 기반하하고 있고, 후자는
표현의 가치 자체에 대한 좀더 긍정적인 믿음이 있다. 당신은 이러한 구별이
온라인 상에서 뿐아니라 V-칩, TV등급제, 그리고 공개적으로 연예오락 회사들을
수치스럽게 만들어 불쾌한 물질로 생각되는 지는 것을 "자발적으로" 검열하게 하는
최근 증가하고 있는 정치적 해결의 경향들에 대한 토론에서 이러한 구별을 볼 수
있다.
정부행위에 기반한 제한을 통해 너무나 좁게 표현의 자유가 중요함을 알아차리는
것은 수정한법을 텅빈 토템의 종류로 만들 위험을 무릅쓰는 것이다. 우리는 표현의
자유에 대해 유익하고 신성한 것이라는 생각을 잃게 만든 수정헌법의 한정된
지시들에 너무나 반사적으로 머리를 조아리고 있다.--정부가 그것을 침해하지
않아야만 한다는 사실을 넘어서.
수 많은 PICS 찬성의 기사들속에 제기되는 한가지 일화는 the Simon Wiesenthal
Center가 PICS를 유대인의 언어에 거슬리는 사이트들을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해
자신들의 필터링 시스템을 만드는데 PICS를 사용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당신은
이보다 더 잘못되어 있고 아이러니 한 예를 상상하기 힘들 것이다. 물론, The
Wiesenthal Center는 반-유태인주의와 홀로코스트, 그 발견의 진실을 부인하는
이들에 초점을 맞추는 사례들을 발견할 임무를 가진다. 완전히 덮어버리지
말아달라. 유대인으로서 나는 미국사회에서의 반-유태인 문학과 선전에 대해
알기를 원한다. 내가 하길 원하는 마지막이 나의 그룹을 향한 모든 종류의 혐오에
대한 사례들로부터 내 눈을 가릴 시스템을 고안하는 것이다. 나는 문에 노크하는
소릴 들었을 때 처음으로 반-유태인주의 관점의 성장에 대해 발견하길 원치
않는다. 온전한 접근은 결과적으로 검열의 윤리와 같은 것이 된다. -우리가 자신을
검열한다는 것을, 자신의 창조물이라는 가리개를 통해 삶을 바라본다는 것을
알아야만 한다고 생각된다.
이러한 넌센스의 큰 부분은 많은 이들이 "디지털 자유주의"라는 구절에 정확하게
연관시키게 되는 정치와 기술에 대한 특유의 소박함의 산물이다. 그러나 우리의
포괄적인 정치 문화와는 더욱 거리가 있다. 우리의 국가적인 정치 토론이
국가검열을 피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는 동안,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자기의 노력으로 자유로운 표현문화에 대해 책임질려는 노력이 거의 없다.(그것을
볼 수 있는 Bill Bennett[2]의 인기와 인기의 편재를 생각해보라) 그리고 아마도
최종분석에서, 이것이 PICS 기반의 인터넷이 왜 좋지않은 아이디어인가에 대한
최고의 이유이다. PICS의 지지자들은 이것이 "중립적"기술이라는 사실을
제기한다.--무한하게 다양한 사용법에 개방적이지만 태생적으로 어떠한 개별
시스템의 신뢰를 지원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사회적 이상으로서 표현의
자유-아니면, 감히 말하건대, 관용-가 몇몇의 승리자만을 가지게 되는 사회에서,
PICS가 그 사회의 수중에 넣기를 원하는 그런 종류의 기술인가? 미국에서, 표현에
대한 날카로운 위협은 항상 정부로부터 나오지는 않으며 반대자들을 괴롭혀
침묵하게 만드는 제맘대로인 다수파로부터 나온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PICS가
가능하게 할지도 모르는 것이다.
*번역자 주:
[1]예상치 않은 PICS의 결과에 대한 사례이다. 이광석, '김자지'씨의 수난과 희망,
일일문화정책동향, http://www.kpaf.org/data/e_zine_data/20010716_4.htm을
참고하라.
[2]Bill Bennett: 레이건 행정부의 교육부장관 출신으로 대표적 보수 논객이다.
그는 [분노의 죽음]이라는 책을 통해 클린턴의 섹스 스캔들을 알면서도 분노하지
않는 대중의 도덕적 불감증을 개탄, 결과적으로 그 후계자인 앨 고어 민주당
후보에게 상처를 입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