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월 26일 개최되는 토론회 <정부의 인터넷 내용규제와 표현의 자유, 무엇이
문제인가?> 의 발표문입니다.
* 각주, 표, 그림 등 전체자료는 4114 번 첨부파일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표현의 자유와 매체의 차이
- 한미의 사법적 이론과 실천을 중심으로 -
이재현 / 문화평론가
1. 나는 표현의 자유란 결코 침해될 수 없는 가장 기본적인 인권이라고 생각, 아니
나의 존엄성과 내적 양심에 근거하는 궁극의 권리라고 믿는다. 따라서 헌법 제21조
4항이나 제37조 2항 따위를 일단 우습게 본다. 그 조항들은 군사 파쇼의 흔적에
불과하다. 표현의 자유와 관련하여 나는 정치적 표현과 비정치적 표현을 구분하지
않는다. 즉 political speech와 non-political speech, 예컨대 commercial
speech의 차이라는 것도 우습다고 본다.
마찬가지로 표현의 자유가 매체에 따라 그 제약의 정도가 달라져야 한다는
통념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또, 고급예술 제도 안에서 누리는 표현의 자유와
대중문화 제도 안에서 누리는 표현의 자유는 그 정도가 다르다는 통념에도 찬성할
수 없다. 바르트, 푸코, 부르디외와 함께 스크럼을 짠 나로서는, 통념이나
제도라는 것이야말로 내가 제일 혐오하는 것, 아니 내가 제일 경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나의 태도와 취향은 박정희와 전두환이 형성시켜 준 것인데, 김영삼이나
김대중도 완화시키지는 못했다. 물론 이런 식의 <표현>은 이런 자리에서만
가능하다. 탈세를 일삼는 소위 유력지들이 제공하는 여론 공간이나 대한민국의
법정에서는 불가능하다.
눈을 잠시 다른 데로 돌려보면, 바로 그러한 부르주아 헤게모니의 공간의 원초적
보수성보다도, 지난 시기에 함께 군사 파쇼와 싸웠던 과거의 동지들이 더 문제일
수도 있다. 2001년 6월 11일자 한겨레 2면에 실린 소설가 현기영의 글은 나를
놀라게 만든다. <표현>만 완화되었달 뿐이지, 현기영의 당당한 발언은
청소년보호위원회나 정보통신윤리위원회의 논조와 크게 다르지 않다. 종이책과
인터넷을 선과 악으로 극단적으로 대립시켜 놓은 이 구도는
<인터넷=불법ㆍ유해ㆍ불온정보&음란사이트&자살사이트&폭탄제조법&원조교제_채팅>이라는
말도 안 되는 폭력적 통념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못하다.
사실 따지고 보면, 박노해와 황석영의 국가보안법 사건에서는 큰 목소리를 내던
상당수의 작가들은 마광수와 장정일의 소위 음란소설에 대해서는 "왜 우리가
쓰레기를 옹호해야 하는가" 하며 주저했다. 이제 와서 따지고 보면, 정작 쓰레기는
바로 그렇게 주저한 사람들의 속생각이다. 그런데, 지금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상당수 미술가들은 김인규를 적극적으로 옹호하지 않는다. 내 고유의
<통념>에 따른다면, 이러한 소극성은 미필적 고의에 의해 검열을 정당화하는
것이다.
반면에, 우리는 일찍이 히틀러 치하의 본 회퍼 목사가 교시한 연대의 원리에 따라
신철의 <거짓말>을 신학철의 <모내기>만큼 옹호했다. 언젠가 우리의 목을 죌 국가
권력에 맞서기 위해서는 일체의 표현의 자유를 유린하는 검열의 권력에 맞서
싸워야 한다. 그런데, 바로 그 검열의 권력은 7월 1일부터 고엽제 융단폭격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위의 물음은 실제로 김인규에 대해 두 번째로 청구된 영장을 심리하는 과정에서
판사가 던진 것과 유사하다. 비겁하게도, 나는 준비된 답으로 맞받아 치지를
못했다. 법정에서와 마찬가지로, 탈세 전문 조중동이 그 헤게모니를 움켜쥐고 있는
대한민국의 상식의 광장, 통념의 무대에서는 헤테로독시의 어법이 통하지 않는다.
그러니, 매우 귀찮더라도 더 교활하게 공부를 해야 한다. 화염병 대신 마우스로
인터넷 서핑을 해가며 논변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다 정치적
원죄, 즉 박정희와 전두환 때문에 국가보안법, 다시 말해, 헌법보다 힘이 쎈
국가보안법을 무시한 결과, 모든 법을 무시했던 과거의 업보라고 아니 할 수 없는
노릇이다.
2. 우선, 표현의 자유 중에서 언론/출판의 자유, 그 중에서도 정치적인
언론/출판의 자유에 대해서 먼저 이야기 해보자. 흔히 권리장전(Bill of
Rights)이라고 불리는 미 수정헌법 제1조는 흔히 말하는 표현의 자유를 규정하고
있다. 이 표현의 자유에는 언론, 집회, 결사, 청원이 다 포함된다. 또 이와
연관해서, 또한 미 수정헌법 제5조와 제14조는 되풀이해서 '적정 절차(due
process)'를 강조하고 있음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지난 번 김인규 교사의 직위해제 건으로 충남 교육청을 항의방문하고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한 젊은 화가는 내게 물었다. "그런데, 왜 혁명이 일어나지 않는
거요?" 한국은 잘 모르겠고, 미국의 경우에는, 미 연방대법원이 바로 미 수정헌법
제1조에 관한 한, 정치적 출판의 영역에서의 표현의 자유는
내용편향적(content-biased)이지 않기 때문이다. 국가보안법과 관련된 위헌
심사에서 한정 합헌 따위의 판결을 내리는 한국의 헌법재판소와 아주 대조가 된다.
이적 표현 따위의 발상이나 언사란 없는 것이다. 어쨌거나 거칠게 말해서 이
영역에서는 사전 제한이 금지되어 있고 사후 처벌의 범위가 매우 제한되어 있다.
정부에 대해 매우 높은 수준의 적정 절차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대법원이나 헌법재판소가 이런 수준의 판결을 내리면, 조중동 사설은 김용갑의
어투로 "빨갱이에게 표현의 자유라니?"하며 열나 대들 것이 틀림없다.
조중동과 김용갑과는 반대로, 미국 헌법에 대한 연방대법원의 판결상 표현의
자유는 경제적 자유 등보다도 우월적 지위(preferred position)를 누린다. 표현의
자유가 다른 기본권과 상충될 때에는 표현의 자유를 우선해야 하며, 다른 기본권이
표현의 자유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을 입증할 책임은 그것을 주장하는 쪽에 있다는
것이다. 안경환 교수에 의하면, 이 우월적 지위의 구체적 내용은 제한 입법의
위헌성 추정, 엄격한 해석의 원칙, 사전 제한(prior restraint)의 금지와 사후
처벌의 범위 제한, 원고 적격의 완화, 정부에 대한 높은 수준의 적정 절차 요구
등이라고 한다.
이 영역에서 표현의 자유 문제와 관련하여 미 연방대법원이 확립한 몇 개의 기본적
원칙들로는 과도한 광범성 원리(overbreath doctrine), 명확성 원칙(void for
vagueness), 최소한 억제수단 선택 기준(least restrictive means test) 등이
있다. 광범성 원리란 헌법상 보호하지 못하는 행위를 규제하거나 처벌하는 법률이
만약 헌법상 보호하는 행위까지 포함하여 규제하고 있는 경우에는 그 법률 전부를
위헌으로 보아야 한다는 원리다. 아주 당근으로 합리적인 원리다. 명확성의
원칙이란 막연하다면 무효라는 원칙이다. 한국의 경우에도 헌법재판소는, 음란의
개념과 달리 저속의 개념과 관련해서는 "명확성의 원칙 및 과도한 광범성의 원칙에
반한다"고 판시하고 있다(1998.4.30. 95헌가16). 최소한 억제수단 선택 기준이란
기준이다. 표현 행위를 규제하는 데 있어서 만약 더 경미하고 관대한 제한수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강력하고 과중한 제한수단을 선택하는 경우에는 위헌이라는
것이다. 이것도 당근이다. 우리가 미국에서 들여와야 할 것은 개좆같은 안락의자,
그러니까 SOFA가 아니라 바로 이런 원칙들이다.
물론, 미국에서도 표현의 자유라고 해서, 무조건 다 용인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이
공격적 혹은 모욕적 언사에 해당되는가 상징적 표현에 해당하는가에 따라 그리고
언론에 대한 억세스권과 관련하여 미디어별로 서로 다르게 접근하는 등 미
연방대법원은 여러 판례를 남기고 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미 연방대법원은
정치적 의사표시의 방법으로 성조기를 태우는 것도 표현의 자유에 간주한다(491
U.S. 397, 그리고 496 U.S. 310). 바로 이런 연방대법원을 가진 미 제국주의에
대한 불타는 적개심에도 불구하고 구국의 일념을 나타내기 위해 태극기를 몸에
휘둘러야 했던 1980년대의 주사파 학생들, 그리고 지난 대선 때 '애국심'의
머리띠를 하고 나선 이인제 후보를 생각해 보면, 우리가 얼마나 한심한가를 잘 알
수 있다.
3. 출판의 영역이라고 하더라도, 소위 음란물은 미 수정헌법 제1조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이것은 소위 1957년의 Roth 판결(354 U.S. 476)에서 출발하여 1973년의
Miller 판결(413 U.S. 15)에 이르기까지 미 연방대법원에서 여러 차례 확인된
것이다.
Roth 판결에서 판결문을 집필한 브래넌 대법관은 소위 음란물은 수정헌법 1조에
의해 보호받지 못하며, 소위 음란성(obscenity)이란 "호색적인 흥미를 일으키는
방식으로 성을 다룬 것(a material which deals with sex in a appealing to
prurient interest)"이고 음란물 판별 기준은 "보통사람에 대해 당대 커뮤니티의
기준을 적용했을 때, 전체로서 다루어진 자료의 지배적 주제가 호색적인 흥미를
일으키는 것(to average person, applying contemporary community standards, the
dominant theme of the material taken as a whole appeals to prurient
interest)"이라고 판시했다(장호순, 152).
그 후 1964년의 Jacobellis 판결(378 U.S. 184)에서는 미 연방대법원은 <사랑하는
사람들(Les Amants)>이라는 영화 상영으로 하급심에서 유죄 판결 받은 극장주에게
무죄 판결을 내리면서 영화 장면 일부에 성행위 묘사가 있지만 미국의 1백여
도시에서 상영되었고 유명 영화잡지나 영화비평가로부터 호평 받은 영화를
음란하다고 간주할 수 없다고 했다. 또한 청소년에게 바람직하지 않다면
그들에게만 상영을 금하면 되고, Roth 판결에서의 '당대 커뮤니티의 기준'은 해당
지역성을 고려하라는 것이 아니라 미국 사회의 전반적인 기준을 적용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 판결에서 소위 음란성과 관련해서 미 연방대법원이 지역적 기준으로
제시한 판결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The "contemporary community standards" by which the issue of obscenity is to
be determined are not those of the particular local community from which the
case arises, but those of the Nation as a whole.
한편, 1966년의 Memoirs 판례(383 U.S. 413)에서 미 연방대법원은 소위 음란물로
보일지라도 사회적 가치가 있다면 음란물로 판정할 수 없으며 사회적 가치가
없다는 것의 입증 책임은 검찰에게 있다고 판시했다(장호순, 153). 패니 힐의 소설
"Cleland's Memoirs of a Woman of Pleasure"의 소위 음란성을 둘러싼 법정
공방에서 메사추세츠 주 대법원은 이 책이 수정헌법 제1조와 제14조의 보호를 받을
수 없다고 판결했지만, 미 연방대법원은 이를 뒤집은 것이다. 참고로, 미 수정헌법
제14조의 내용은 "어떤 주정부의 법도 법률이 정하는 정당한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누구에 대해서도 생명, 자유, 재산을 박탈하지 못하며" 서로 다른 주에
사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법의 균등한 보호"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소위 음란성을 둘러싼 미 연방대법원에서의 이러한 공방은 1973년 Miller 판결(413
U.S. 15)로 귀결되었다. 사건 경과인즉, 1973년 캘리포니아주 뉴포트비치의 한
식당에 우편물 배달이 되었는데, 식당의 여주인은 이 우편물 경찰 신고했다. 이
우편물은 책과 영화의 성 표현물을 선전하는 광고 전단이었는데 여기에는 성행위를
하는 이미지와 성기가 다루어진 이미지가 포함되어 있었다. 결국 전단 보낸
Miller는 음란물을 금지한 주 형법의 위반 혐의로 체포되고, 재판에 회부되었다.
Miller를 유죄로 판결한 이 판결에서 Burger 연방대법원장은 소위 음란물은
수정헌법 1조에 의해 보호받지 못하며, 소위 음란물의 기준은 다음 세 가지라는
것이다.
a. 일반 보통인의 판단에, 당대 커뮤니티의 표준을 적용할 때, 특정 작품이 전체로
보아서 호색적인 관심에 호소하는가의 여부(whether "the average person,
applying contemporary community standards" would find that the work, taken as
a whole, appeals to the prurient interest).
b. 작품이 당해 주 법에 의해서 특정해서 정의된 성행위를 명백히 모욕적인
방법으로 묘사하거나 기술하는가의 여부(whether the work depicts or describes,
in a patently offensive way, sexual conduct specifically defined by the
applicable state law).
c. 전체로서 보았을 때 작품이 진지한 문학적, 예술적, 정치적 또는 과학적 가치를
결여했는가의 여부(whether the work, taken as a whole, lacks serious literary,
artistic, political, or scientific value).
4. 방송의 영역에서는 소위 음란물뿐만이 아니라 저속한(the indecent) 것도
수정헌법 제1조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FCC v. PACIFICA FOUNDATION, 438 U.S. 726,
1978). 그렇다면 인터넷에 대한 미국 법원의 입장은 어떠한 것일까. 이를 알기
위해서는, 소위 통신품위법(Communication Decency Act: CDA)의 위헌성을 둘러싼
연방대법원의 판례(1997년)와 이후 아동온라인보호법(Child Online Protection
Act: COPA)에 대한 미연방 제3순회항소심의 판결(2000)을 검토해야 한다.
4-1. CDA를 둘러싼 공방에서 미 연방대법원은, CDA에서 "저속한 것의
전달(indecent transmission)"과 "명백히 모욕적인 것의 전시(patently offensive
display)"을 금지한 것이, 미 수정헌법 제1조에 의해 보장되는 표현의 자유를
박탈한다고 판결했다. 그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a) Although the CDA's vagueness is relevant to the First Amendment
overbreadth inquiry, the judgment should be affirmed without reaching the
Fifth Amendment issue.
(b) A close look at the precedents relied on by the Government--Ginsberg v.
New York, 390 U.S. 629 ; FCC v. Pacifica Foundation, 438 U.S. 726 ; and
Renton v. Playtime Theatres, Inc., 475 U.S. 41 --raises, rather than
relieves, doubts about the CDA's constitutionality. The CDA differs from the
various laws and orders upheld in those cases in many ways, including that it
does not allow parents to consent to their children's use of restricted
materials; is not limited to commercial transactions; fails to provide any
definition of "indecent" and omits any requirement that "patently offensive"
material lack socially redeeming value; neither limits its broad categorical
prohibitions to particular times nor bases them on an evaluation by an agency
familiar with the medium's unique characteristics; is punitive; applies to a
medium that, unlike radio, receives full First Amendment protection; and
cannot be properly analyzed as a form of time, place, and manner regulation
because it is a content based blanket restriction on speech. These
precedents, then, do not require the Court to uphold the CDA and are fully
consistent with the application of the most stringent review of its
provisions.
(c) The special factors recognized in some of the Court's cases as justifying
regulation of the broadcast media--the history of extensive government
regulation of broadcasting, see, e.g., Red Lion Broadcasting Co. v. FCC, 395
U.S. 367, 399 -400; the scarcity of available frequencies at its inception,
see, e.g., Turner Broadcasting System, Inc. v. FCC, 512 U.S. 622, 637 -638;
and its "invasive" nature, see Sable Communications of Cal., Inc. v. FCC, 492
U.S. 115, 128 --are not present in cyberspace. Thus, these cases provide no
basis for qualifying the level of First Amendment scrutiny that should be
applied to the Internet.
(d) Regardless of whether the CDA is so vague that it violates the Fifth
Amendment, the many ambiguities concerning the scope of its coverage render
it problematic for First Amendment purposes. For instance, its use of the
undefined terms "indecent" and "patently offensive" will provoke uncertainty
among speakers about how the twostandards relate to each other and just what
they mean. The vagueness of such a content based regulation, see, e.g.,
Gentile v. State Bar of Nev., 501 U.S. 1030 , coupled with its increased
deterrent effect as a criminal statute, see, e.g., Dombrowski v. Pfister, 380
U.S. 479 , raise special First Amendment concerns because of its obvious
chilling effect on free speech. Contrary to the Government's argument, the
CDA is not saved from vagueness by the fact that its "patently offensive"
standard repeats the second part of the three prong obscenity test set forth
in Miller v. California, 413 U.S. 15, 24 . The second Miller prong reduces
the inherent vagueness of its own "patently offensive" term by requiring that
the proscribed material be "specifically defined by the applicable state
law." In addition, the CDA applies only to "sexual conduct," whereas, the CDA
prohibition extends also to "excretory activities" and "organs" of both a
sexual and excretory nature. Each of Miller's other two prongs also
critically limits the uncertain sweep of the obscenity definition. Just
because a definition including three limitations is not vague, it does not
follow that one of those limitations, standing alone, is not vague. The CDA's
vagueness undermines the likelihood that it has been carefully tailored to
the congressional goal of protecting minors from potentially harmful
materials.
(e) The CDA lacks the precision that the First Amendment requires when a
statute regulates the content of speech. Although the Government has an
interest in protecting children from potentially harmful materials, see,
e.g., Ginsberg, 390 U.S., at 639 , the CDA pursues that interest by
suppressing a large amount of speech that adults have a constitutional right
to send and receive, see, e.g., Sable, supra, at 126. Its breadth is wholly
unprecedented. The CDA's burden on adult speech is unacceptable if less
restrictive alternatives would be at least as effective in achieving the
Act's legitimate purposes. See, e.g., Sable, 492 U.S., at 126 . The
Government has not proved otherwise. On the other hand, the District Court
found that currently available user based software suggests that a reasonably
effective method by which parents can prevent their children from accessing
material which the parents believe is inappropriate will soon be widely
available. Moreover, the arguments in this Court referred to possible
alternatives such as requiring that indecent material be "tagged" to
facilitate parental control, making exceptions for messages with artistic or
educational value, providing some tolerance for parental choice, and
regulating some portions of the Internet differently than others.
Particularly in the light of the absence of any detailed congressional
findings, or even hearings addressing the CDA's special problems, the Court
is persuaded that the CDA is not narrowly tailored.
(f) The Government's three additional arguments for sustaining the CDA's
affirmative prohibitions are rejected. First, the contention that the Act is
constitutional because it leaves open ample "alternative channels" of
communication is unpersuasive because the CDA regulates speech on the basis
of its content, so that a "time, place, and manner" analysis is inapplicable.
See, e.g., Consolidated Edison Co. of N. Y. v. Public Serv. Comm'n of N. Y.,
447 U.S. 530, 536 . Second, the assertion that the CDA's "knowledge" and
"specific person" requirements significantly restrict its permissible
application to communications to persons the sender knows to be under 18 is
untenable, given that most Internet forums are open to all comers and that
even the strongest reading of the "specific person" requirement would confer
broad powers of censorship, in the form of a "heckler's veto," upon any
opponent of indecent speech. Finally, there is no textual support for the
submission that material having scientific, educational, or other redeeming
social value will necessarily fall outside the CDA's prohibitions.
(g) The §223(e)(5) defenses do not constitute the sort of "narrow tailoring"
that would save the CDA. The Government's argument that transmitters may take
protective "good faith actio[n]" by "tagging" their indecent communications
in a way that would indicate their contents, thus permitting recipients to
block their reception with appropriate software, is illusory, given the
requirement that such action be "effective": The proposed screening software
does not currently exist, but, even if it did, there would be no way of
knowing whether a potential recipient would actually block the encoded
material. The Government also failed to prove that §223(b)(5)'s verification
defense would significantly reduce the CDA's heavy burden on adult speech.
Although such verification is actually being used by some commercial
providers of sexually explicit material, the District Court's findings
indicate that it is not economically feasible for most noncommercial
speakers.
(h) The Government's argument that this Court should preserve the CDA's
constitutionality by honoring its severability clause, §608, and by
construing nonseverable terms narrowly, is acceptable in only one respect.
Because obscene speech may be banned totally, see Miller, supra, at 18, and
§223(a)'s restriction of "obscene" material enjoys a textual manifestation
separate from that for "indecent" material, the Court can sever the term "or
indecent" from the statute, leaving the rest of §223(a) standing.
(i) The Government's argument that its "significant" interest in fostering
the Internet's growth provides an independent basis for upholding the CDA's
constitutionality is singularly unpersuasive. The dramatic expansion of this
new forum contradicts the factual basisunderlying this contention: that the
unregulated availability of "indecent" and "patently offensive" material is
driving people away from the Internet.
위에 뒤이어서 미 연방대법원은 인터넷에 관해 그 탄생, 성장, 네트워크에
접속되어 있는 상업적 서비스에 연결된 사람들의 수, 이메일ㆍ뉴스그룹ㆍ채팅ㆍ웹
등의 전송방식 내지는 접근방식 등의 사실을 개괄적으로 검토한 뒤 인터넷의
성격에 관해서 출판업자의 관점을 빌어서 다음과 같이 결정적인 언급을 한다.
From the publishers' point of view, it constitutes a vast platform from which
to address and hear from a world wide audience of millions of readers,
viewers, researchers, and buyers. Any person or organization with a computer
connected to the Internet can "publish" information. Publishers include
government agencies, educational institutions, commercial entities, advocacy
groups, and individuals. Publishers may either make their material available
to the entire pool of Internet users, or confine access to a selected group,
such as those willing to pay for the privilege. "No single organization
controls any membership in the Web, nor is there any centralized point from
which individual Web sites or services can be blocked from the Web."
결국, 인터넷은 방송에 가까운 매체라기보다는 오히려 출판에 가까운 매체라는
것이다. 방송과는 달리 인터넷은 수정헌법 제1조의 완전한 보호를 받는 매체라는
것이다.
4-2. CDA가 위헌으로 판정되자 미국의 씹탱이들(어디에나 씹탱이는 열라 있다)은
'저속한'이라는 모호한 규정 대신에 '미성년자에게 해로운(harmful to minor)'
기준을 들고 나섰다. 또, 규제 대상도 인터넷 전반 대신에 '상업적 웹 사이트'에
한정하는 법안을 만들기에 이른다. 이른바 COPA가 그것이다.
COPA가 1998년 10월에 의회를 통과하자, CDA에 대한 위헌 소송을 제기했던
A.C.L.U(AMERICAN CIVIL LIBERTIES UNION)에서는 곧바로 소송을 제기했다. 굳이
설명을 하자면, A.C.L.U.는 내가 본 문헌상으로만 판단하건대, 한국으로 치면
<인권운동사람방> + <민변> + <문화연대>에 해당하는 시민단체인 듯하다.
어쨌거나, 그런 뒤 필라델피아 연방지방법원에서는 COPA에 대해 예비
금지명령(preliminary injunction)을 내렸고 이에 대해 미 법무부가 항소하자
미연방 제3순회항소심은 지방법원의 예비 금지명령을 다음과 같이
인정한다(grant).
We will affirm the District Court's grant of a preliminary injunction because
we are confident that the ACLU's attack on COPA's constitutionality is likely
to succeed on the merits. Because material posted on the Web is accessible by
all Internet users worldwide, and because current technology does not permit
a Web publisher to restrict
access to its site based on the geographic locale of each particular Internet
user, COPA essentially requires that every Web publisher subject to the
statute abide by the most restrictive and conservative state's community
standards in order to avoid criminal liability. Thus, because the standard by
which COPA gauges whether material is "harmful to minors" is based on
identifying "contemporary community standards" the inability of Web
publishers to restrict access to their Web sites based on the geographic
locale of the site visitor, in and of itself, imposes an impermissible burden
on constitutionally protected First Amendment speech.
In affirming the District Court, we are forced to recognize that, at present,
due to technological limitations, there may be no other means by which
harmful material on the Web may be constitutionally restricted, although, in
light of rapidly developing technological advances, what may now be
impossible to regulate constitutionally may, in the not-too-distant future,
become feasible.
이후 연속되는 판결문에서, 연방 제3항소심은 매우 까다롭고 자세한 논증을
통해서, 밀러 판례에서의 '당대 커뮤니티의 표준'을 인터넷에 적용하는 것은
무리라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즉, COPA가 부과하는 책임을 지키고 처벌을 면하기
위해서 웹 제작자(publisher!)가 가장 보수적으로 엄격한 주 정부의 기준을
만족시키려고 한다면, 그렇지 않은 경우 유통될 수 있는 자료들을 볼 수 있는
헌법적 권리를 지닌 성인들의 자유가 박탈당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즉,
밀러 판례에서와 같이, 혹은 Sable 판례(492 U.S. 115)에서와 같이, 주 법이
금지하고 있는 소위 음란물을 우편이나 전화를 통해 보내는 사람은 바로 그
내용물을 받는 공동체의 대상 범위와 관련하여 통제력을 지닐 수 있지만,
인터넷에서는 그럴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당대 커뮤니티의 표준'을 인터넷에
적용하는 것은 과도한 광범성의 원칙에 반하게 되어 위헌이며, 동시에 여기에서
항소심은 표현의 자유와 관련된 소위 '이익 형량의 원칙(interest nalancing
test)'를 적용하면서, 표현의 자유의 예상되는 침해는 COPA를 시행했을 때보다 더
큰 해악을 가져온다는 것이다(이에 대한 비교적 상세한 논의는 배영수[2001]를
참조할 것).
5. 김인규에 대한 두 번째의 영장청구서에서, "공공장소에서 성기노출은 당연히
음란한 행위"라는 대법원의 판결(대법원 2000.12.22. 선고 2000도4373)을 인용한
뒤, "인터넷은 청소년부터 성인까지 불특정 다수인이 접속하는 대표적인 장소"이며
"어떤 행위가 인터넷에서 이루어졌다면 이는 '공공장소에서 직접 동일한 행위'를
한 것과 동등하게 평가되어야 할 것"이라는 말도 안되는 주장을 펴고
있다(대전지방검찰청홍성지청, <구속영장청구서> 9쪽, 2001.6.11.).
그런데, 검사가 구속영장청구서에서 김인규에게 적용하고 있는 법 조항은
<전기통신기본법> 제48조의 2이다. 이 조항은 "제48조의2 (벌칙) 전기통신역무를
이용하여 음란한 부호·문언·음향 또는 영상을 반포·판매 또는 임대하거나
공연히 전시한 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라는
것이다.
왜, 검사는 <인터넷 성기노출 = 공공장소에서의 성기노출>이라는 자신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형법 제243조나 제244조나 제245조를 김인규에게 적용하지 않았을까.
참고로 각 조문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제243조 (음화반포등) 음란한 문서, 도화, 필름 기타 물건을 반포, 판매 또는
임대하거나 공연히 전시 또는 상영한 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제244조 (음화제조등) 제243조의 행위에 공할 목적으로 음란한 물건을 제조, 소지,
수입 또는 수출한 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제245조 (공연음란) 공연히 음란한 행위를 한 자는 1년 이하의 징역, 500만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에 처한다.
그런데 대법원은 <1999.2.24. 선고 98도3140>의 판례에서 "컴퓨터 프로그램 파일을
컴퓨터 통신망을 통하여 전송하는 방법으로 판매한 행위"에 대해서는 형법
제243조의 규정을 적용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한편, COPA에 관한 판결에서 미
연방 제3순회항소심은 오프라인과 온라인의 차이에 관해서, 당근,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we are convinced that there are crucial differences between a "brick and
mortar outlet" and the online Web that dramatically affect a First Amendment
analysis. Unlike a "brick and mortar outlet" with a specific geographic
locale, and unlike the voluntary physical mailing of material from one
geographic location to another, as in Miller, the uncontroverted facts
indicate that the Web is not geographically constrained.
여기서 "brick and mortar outlet"라고 한 것은 off-line에 대한 환유적 표현을
인용한 것이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차이에 관해서, 미국 항소심 판사는 '논박될
수 없는(uncontroverted)'이라는 형용사를 쓰고 있다. 이런 정도는 당연히 알고
있는 한국의 담당 검사는 <온라인=오프라인>이라는 말도 안 되는 논리를 전개한
뒤, 법 적용에서는 슬그머니 샛길로 빠지고 만 것이다.
그런데, 사실 더 큰 문제는 <전기통신기본법 제48조의2>에 있다. 이 조항에서
<음란한>이라는 규정과 관련한 대법원의 판례는 너무 확고하다고 한다. 마광수의
소설 <즐거운 사라> 사건이나 열음사의 번역 소설 <아마티스타> 사건에서 확인된
대법원 판례는 마치 복사기를 이용한 듯 똑같다. 특히, 후자의 판례에서 대법원은
외국의 "애정선정물에 대한 긍정적 평가를 그대로 우리 사회에 적용할 수 없"으며
"우리 시대의 건전한 사회통념에 비추어" 결정해야 할 것이라고 판결하고 있다는
것이다(대법원 1997.12.26. 선고97누11287, 한상희. 4쪽에서 재인용).
한상희 교수의 주장에 의하면, 따라서 소위 음란성의 애매모호성을 중심으로
다투려고 하기보다는, 행위 태양[態樣?]을 논점으로 삼아 다투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이다. <전기통신기본법 제48조의2>는 형법 243조의 "음란죄에 음란물의
유통경로만을 추가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추가'는
사이버공간 내지는 정보통신 영역의 특수성을 감안하지 않은 것이다(한상희,
4-5쪽). 한교수의 견해에 의하면, 무한참조, 무한편집, 무한연쇄 등과 같은
인터넷의 상호작용성을 염두에 둘 때 형법상의 '자기지배 하에서의 음란
표현'이라는 개념을 인터넷에 적용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음란
판단의 전제가 되는 전체로서의 맥락이나 발신자의 표현행위와 그 내용이라는 것은
거의 무의미해"지며, "한마디로 음란죄의 판단에 발신자의 고의를 특정하기
어렵다는 결론이 나온다는 것이다."(한상희, 6쪽)
특히 이런 점에서 <전기통신기본법 제48조의2>에서 행위 태양을 "반포·판매 또는
임대하거나 공연히 전시"라고 규정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는 게 한교수의 견해다.
즉, "통상적으로 반포는 그 객체에 대한 지배력이 이전하는 경우를, 전시는
지배력은 그대로 두되 일반인의 인지가 가능한 상태에 두는 것을 의미하는 바,
파일송수신의 방식은 몰라도 WWW방식에서는 수신자가 따로 당해 파일을 저장하지
않는 한 일단은 Cashe 방식으로 임시저장 될 뿐이라는 점에서 반포에 해당하지
않고 또 인지의 장소가 발신자의 컴퓨터가 아니라 수신자의 컴퓨터라는 점에서
전시에도 해당하지 않는다"고 밝히고 있다.(한상희, 5쪽)
6. 김인규 사건은 여러 가지로 다양한 층위의 문제들로 구성되어 있다. 일단 두서
없이 나열해 보면 다음과 같다.
a. 성기가 노출된 부부의 알몸 사진과 기타 작품은 음란한가 아닌가
b. 이것들은 청소년에게 유해한가 아닌가
c. 이것들 일부에 청소년을 등장시켰는가 아닌가
(어처구니없기는 하지만, 어쨌거나 일단 <청소년의성보호에관한법률> 위반
여부)
d. 이것들을 인터넷에 올려도 되는가
e. 인터넷은 방송 혹은 오프라인과 마찬가지로 다뤄야 하는가
f. 특히 <교사>가 이러한 일을 했다면 교사 및 공무원으로서의 품위 유지에
저해되는가
g. 음란, 외설, 청소년유해 등의 규정은 반국가적, 이적성, 불온성 등의 규정과는
어떻게 다른가
h. 사회적 통념을 중심으로 소위 음란성을 다투고 있는 와중에 내려지는 교육 제도
안에서의 징계는 타당한가
이런 문제들에 대한 시비는 궁극적으로는 법정에서 가려질 것이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 결론이 나든지 간에 그것이 문제에 대한 올바른 접근방식이나 답 찾기
과정은 결코 아니다. 문화연대에서 줄기차게 주장해 왔듯이 사법적 결정 이전에
문화적, 교육적 커뮤니케이션이 충분히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사회운동 진영에서 이 문제에 대한 대응은 앞으로 더 섬세해져야 한다. 전교조는
물론이고 학부모운동단체, 여성운동단체와 내용적으로 결합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추상적인 차원에서 표현의 자유를 계속 언급하기보다는 성
표현물에 대한 이론적, 실증적 담론을 더 대중적이고 설득력 있게 전개해나가야 할
것이다. 이 점에서는 내 글도 좋은 점수를 받기는 힘들겠지만.
좀 엉뚱한 얘기인지 모르겠지만, 난 이제 강요되는 애국심, 강요되는 사회기강,
강요되는 윤리, 강요되는 건전한 에로티시즘 따위는 너무너무 지겹다.
<청소년=학생>을 둘러싸고 확대 재생산되는 사회적, 도덕적 패닉도 열라 지겹다.
인터넷에 대한 마녀 사냥도 졸라 지겹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예컨대 RSACi
등급체계에서 '성행위가 없는 로맨스'가 모든 연령에게 적합한데 반해서 '명백한
성행위'는 가장 흉악한 등급에 속한다는 것을 알게 되더라도 조금도 놀랍거나
지겹지는 않을 것이다. 성행위 없는 로맨스라는 건 디즈니 애니메이션이나 한국의
드라마에서나 가능하다. 반면에 오프라인이나 온라인 어디에서든 간에 명백한
성행위 쪽이 당근, 더 멋있고 맛있다.
이런 현실에서 문화평론가로 살아간다는 것은 최경태의 변호사로 살아간다는
것보다 더 힘든 일이다. 이 개좆같은 제도의 우파 보수의 두터운 벽에 부딪힐
때마다, 마우스 대신 화염병을 들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된다. 그러니, 누군가
나에게 "자판 입력은 쓰다, 그러나 그 열매는 달다"라든가 "화염병은 짧고
마우스는 길다" 따위의 격언을 자꾸 큰소리 되풀이해서 외쳐주었으면 좋겠다. 너무
투명한 '거짓말'일지라도 말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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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광희(1997), "'표현의 자유'의 침해에 대한 대응과 전망", <이 달의 민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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