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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 4121
글쓴날 : 2001-06-25 21:36:16
글쓴이 : 공동행동 조회 : 782
제목: [토론회/토론] 민경배 (사이버문화연구소 소장)

더 이상 통제의 칼날을 휘두르지 말라

민경배 / 사이버문화연구소 소장



정말 해도해도 너무 한다. 자신의 누드 사진을 홈페이지에 올렸다는 이유로 논란을
빚었던 김인규 교사가 결국 교단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동네 공중 목욕탕만 가도
흔히 볼 수 있는 그저 그런 누드가 담긴 사진 한 장을 놓고, 음란물이니 어쩌니
하면서 말도 안되는 생트집을 잡았던 것부터가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아슬아슬한
노출로 고혹적인 자태를 자랑하는 여자 연예인의 사진이 아침마다 거리의 신문
가판대를 장식하고 있는 이 나라에서, 밤만 되면 골목골목마다 단란주점과
과부촌의 휘황찬란한 네온사인이 번쩍거리는 이 나라에서, 진짜 음란한 사진이
어떻게 생겼는지 아직 한번도 못 봤다는 듯 순진한 척 호들갑떠는 모습이 역겨울
뿐이다. 
음란물 논란이라는 선정적인 소재는 단지 사람들의 관심을 호도하기 위해 피워놓은
연막에 불과하다. 정작 중요한 사태의 본질은 개인의 표현물에 대한 국가의 강제적
규제와 통제가 이런 식으로 무자비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홈페이지 강제 폐쇄 조치에 이어 곧바로 단행된 김인규 교사의 직위 해제는
온라인에 대한 규제와 통제가 단지 온라인 공간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적 삶이 이루어지는 현실세계에 대한 규제와 통제로 직결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다.
사이버스페이스는 수평적·분산적 공간이며, 탈국경화된 세계이기 때문에 국가의
규제와 통제가 불가능한 자유로운 공간이라는 장alt빛 낙관론은 이미 공염불이
되어 버린지 오래이다. 사이버스페이스를 식민지화하기 위한 국가의 공세는 날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최근에만 해도 <애니나라>, <아이노스쿨> 등의 사이트가
국가의 번득이는 통제의 칼날 아래 잇달아 추풍낙엽처럼 쓰러지고 있지 않은가.
<애니나라>의 경우만 해도 그렇다. 국내 기술로 개발된 파일 공유 프로그램인
<애니나라>는 냅스터의 기술을 앞지르는 가장 진일보한 P2P 시스템이다. 입만 열면
정보 강국을 부르짖는 정부로서는 오히려 전략적으로 양성해 주어야 할 기술
산업이다. 그런데 애니나라를 통해 음란물을 교환하는 이용자들이 있다는 이유로
이를 강제 폐쇄시킨 것은 여러 가지로 납득하기 힘든 처사이다. 음란 비디오
테이프가 있다고 VCR을 만들어 팔지 못하게 하자는 이야기나 마찬가지며, 일산
신도시에 러브호텔이 들어선다고 일산시 자체를 갈아엎자는 것과 다를 바 없는
황당한 발상이다. 
<아이노스쿨>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학교를 자퇴했거나 혹은 자퇴를 고민하는
학생들이 서로 의견과 정보를 주고받던 커뮤니티 사이트를 선량한 학생들에게
자퇴를 조장하고 부추긴다는 이유로 강제 폐쇄시킨 행위 역시 횡포라는 말
이외에는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 그렇다면 자퇴한 학생들은 모두 다 불량한
학생들이란 말인가? 그리고 자퇴한 학생들은 자신들의 의사표현을 공개적으로 할
권리조차 없단 말인가? 정작 학생들을 학교 밖으로 몰아내고 있는 암담한
교육현실에 대해서는 왜 입을 꾹 다물고 있는지 묻고 싶다.
이제 사이버스페이스에 대한 국가의 규제와 통제가 타당한 것인가의 여부를 따지는
것은 부질없는 탁상공론이 되어 버렸는지도 모른다. 어차피 국가는 사이버스페이스
곳곳에서 이리저리 칼날을 휘두르고 있다. 하지만 이왕 칼날을 휘두를 바에는
그래도 폼나게 제대로 휘두르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한다. 사이버스페이스가
오프라인 세계와는 다른 패러다임으로 작동하는 세계임을 인정하고, 그에 걸맞는
통제 방식을 구사해 보라는 말이다. 그럴 자신이 없다면 과감히 통제의 칼날을
거두고 사이버스페이스에 자율적인 규범이 만들어지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나
보라고 권하고 싶다. 괜히 이렇게 황당하고 어처구니없는 모양으로 칼날을
휘두르면서 스타일 구기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김인규 교사처럼 억울한
희생양을 또 만들어 내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하지만 이 땅의 모든 선생님들이시여! 당분간은 절대로 동네 공중 목욕탕 같은
곳에는 얼씬도 하지 마시라. 모르는 일 아닌가. 그곳에서 당신의 제자와 우연히
마주치게 될지도. 그래서 목욕탕 한 구석에 벌고 벗고 앉아 때를 미는, 지극히
비교육적이고 비윤리적인 모습을 어린 학생에게 보여줬다는 이유로 정든 교단을
떠나야 하는 수모를 당하지 않는다고 누가 보장하겠는가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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