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생각 - 표현의 자유, 수용의 자유
나는 기본적으로 우리 사회가 점점 건강하고 개방적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믿는다. 불과 3, 4년 전만 해도 사람들이 `학을 떼던' 머리 염색이나 배꼽티에
대해서 훨씬 관대해진 사회 분위기를 보며 나름대로 흐뭇해 하고 있다.
그런데 그렇게 미소를 머금고 있는 내 뒤통수를 사정없이 후려갈기는 사건이
잊을만하면 꼭 터진다. 1999년의 `콘돔 아이스바' 사건(몇몇 단체가 한
아이스크림의 용기가 콘돔과 비슷하게 생겼다며 시판을 금지시키자고 주장한
사건)이라든지 최근 `김인규 교사 사건'같은 것이 그런 경우다. 이런 사건이 터질
때마다 나는 우리사회의 현재 위치를 뼈저리게 깨닫는다. `어떻게 저런 것이
이슈가 될 수가…'라는 생각 다음에는 `내가 우리사회를 과대평가하고
있었구나'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최근 문제가 됐던 박진영 앨범의 `섹스 논쟁'도 마찬가지다. 앨범 전체를 통털어
성행위를 직접 나타내는 가사는 하나도 없다. 설혹 그 가사가 성행위를 `암시'하는
것이었다 할지라도 변태적이거나 비도덕적인 내용은 찾기 힘들었다. 다행스럽게도
등급심의위원회는 매춘이나 마약을 암시하는 자켓을 바꾸라는 것 외에는 아무런
조처를 취하지 않았다.
얼마전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을 다녀왔다. 시내 곳곳에 깔린 `섹스 숍'이라던지
유명한 `홍등가'는 듣던 바 그대로였다. 하지만 정작 놀란 것은 암스테르담 시내
한가운데에 자리잡고 있는 기념품 가게에서였다. 말 그대로 누구나 드나들 수 있는
기념품 가게에서 본 것은 남·여의 성기가 그대로 드러난 사진이 붙여진
`기념엽서'와 진열대 한쪽에 진열된 대마초였다. 형형색색의 콘돔이나 전동
자위기구, 나로서는 사용법을 짐작하기 어려운 수많은 기구들도 함께.
`뭐라고? 성기가 드러난 사진이라고?' 몸과 마음을 파르르 떨고 계실 분이
많으실게다. `아니 대마초를 그런 곳에서?'라고 치를 떠실 분도 많겠다. 그런
곳에서 애들을 키우다가는 다들 강간범에 마약중독자로 변할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다. 거기다 곳곳에 위치한 섹스숍이나 홍등가, 스트립바, 라이브 섹스쇼장까지
더하면 어떤 분들께 거기는 말 그대로 `지옥'이다.
하지만 키득거리며 그런 사진들을 둘러서 보고 `전동 자위기구'를 켰다껐다하던 그
곳의 청소년들의 파란 눈빛이, 새벽별을 보며 학교에 가서 시키는 대로 열심히
공부하는, 또는 학교 강당에 모여 결혼을 할 때까지 꼭 순결을 지키겠다고 선서를
하는 우리 청소년들의 눈빛보다 그리 혼탁해 보이지는 않았다.
물론 청소년에게 유해한 무언가를 막는 일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진짜
유해한 것은 헌법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를 막는 행동이나 청소년을 `판단할 수
있는 뇌가 없는 존재' 정도로 지레짐작해 어떤 틀 속에 가두는 `폭력'이 아닐까.
이형섭 기자 sub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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