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혁명이 개인·사회·권력에 가한 충격의 의미
렉 휘태커 ‘개인의 죽음’
로마 가톨릭 교회에는, 명목상으론 북아프리카 사하라 사막 중앙에 위치하지만
사실은 존재하지 않는 ‘파르테니아’란 교구가 있다. 이 교구는 지난 몇 세기
동안 바티칸이 골치 아픈 주교들을 종교재판 따위의 소동 없이 제거하기 위해
고안해낸 허구의 장소였다. 1995년 좌파적 견해를 지닌 자크 가요트 주교가
이곳으로 인사 발령이 나면서 이 교구의 운명은 전혀 달라졌다. 가요트 주교가 한
일이란 인터넷에 파르테니아(www.partenia.fr)란 웹사이트를 만든 게 전부다. 이로
인해 가요트 주교는 바티칸의 기대와 달리 더 많은 네티즌들과 신학적
사회·정치적 견해를 나눌 수 있게 됐다. 인터넷이 전통적 억압에 저항수단으로
활용된 사례 가운데 하나다.
렉 휘태커 캐나다 요크대 교수(정치학)의 <개인의 죽음>(The End of Privacy)은
디지털혁명이 ‘권력’의 작동방식에 가한 충격을 분석한 글이다. 지은이는
정보혁명 이후 “권력의 출처를 확인하기가 더 모호해”지고 있으며, “국가조직
바깥에서 일어나는 비공식 권력작용”의 영향이 더 커지고 있다고 말한다.
정보의 수집·저장·검색·처리방식의 획기적인 진보는 감시기술 또한 진보하도록
만들었다. 개인의 신상·재정·취향 따위가 수록된 데이터베이스의 거대한
정보탑은 국가가 강압에 의해 만들어낸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사람들은 기업체의
마케팅 담당자로부터 긍정적인 혜택을 기대하며 손쉽게 개인 정보를 이 바벨탑에
보태고 있다. 이 데이터는 국가나 기업의 빅 브라더만 이용하는 게 아니라
개인들의 손에도 흘러들어간다. 지난 97년 미국 오하이오주의 어느 여성은 그의
생일과 이혼 경력 등 개인 신상은 물론 그가 좋아하는 잡지, 샤워할 때 즐겨 쓰는
비누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듯한’ 남자로부터 12쪽에
이르는 협박 편지를 받았다. 그 낯선 남자는 텍사스주 교도소에 복역 중인 강간
절도 전과자였다. 이 여인이 쿠폰과 샘플을 기대하고 작성한 설문지는
‘메트로메일’이란 마케팅 정보 판매상으로 넘겨졌고, 이 회사는 텍사스주 교도소
재소자들에게 설문지의 정보를 입력하도록 하청을 준 것으로 드러났다. 개인의
자발적 참여가 만들어낸 거대한 정보의 바벨탑은 이런 ‘민간 부문의 작은
독재자들’의 등장을 가능하게 만들었고, ‘프라이버시’의 미래에 조종을 울리고
있다.
정보혁명의 미래가 불길한 것만은 아니다. 정보혁명은 쌍방향 감시 또한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98년 멕시코의 사파티스타 농민군은 멕시코 정부의
웹사이트를 해킹해 20세기 초의 멕시코 혁명가 사파타의 사진으로 사이트를 도배해
버렸다. 이들은 재정부의 홈페이지에 “우리는 독재자 당신을 감시하고
있어요!”란 문구를 남기기도 했다. 인터넷 그 자체는 선도 악도 아니다. 인터넷은
극우 신나치 인종주의자들의 선동 수단으로 이용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은이는
새로운 정보기술이 “권력에 대한 미래의 투쟁이 펼쳐질 영역의 지형”을 새롭게
바꿔왔지만, “감시자들을 감시하는 네트워크”를 어떻게 형성하느냐에 따라 이
새로운 환경이 “민주적으로 통제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고 내다본다.
국가를 전체주의의 도구와 동일시하기도 하고, 디지털시대에 세계적인 협력의
주체로 보기도 하는 등 관점의 일관성이 모자란 점이 흠이지만, 풍부한
방증사례들은 디지털혁명이 개인·사회·권력에 가한 충격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
훌륭한 참고자료 구실을 한다. 이명균·노명현 옮김, 생각의나무 펴냄, 1만2000원.
이상수 기자 lees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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