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국의 소리 사태에 대해서 '적에게 빌미를 제공할 수 있으므로 삭제해야
한다'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이는 우리 국민이 아직 '구국의 소리' 게시물이
올라와 있는 것을 용납치 못하는 현실이므로 삭제하는 것이 옳다고 하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는 대중을 빙자하여 자신의 나약성을 드러내는 것 외에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 말대로라면 우리나라에서는 어떠한 운동도 시작 할 수가
없습니다.
국가보안법은 과연 국민 과반수 이상이 폐지에 동의할까요 혹은 10년전만 하더라도
국보법을 폐지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국민정서에 부합하는 일이었을까요?
우리 사회에는 수 많은 모순과 억압이 있고 이것을 타파해 나가는 것은 언제나
선도적 투쟁으로 시작됩니다. '만사람의 한걸음'을 위해 '구국의 소리'게시물을
삭제해야 한다면 과연 우리가 할 수 있는 범위내에 있는 운동이란 무엇입니까?
이는 '구국의 소리'게시물을 삭제하고 싶다거나 '구국의 소리'를 탄압하고 싶다는
것이 아니면 있을 수 없는 주장입니다.
'만사람의 한걸음'이란 운동방법을 말하는 것입니다. 물론 때로 전술적 유연함
혹은 후퇴를 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국가보안법에 관해서는 어떠한 전술적
유연함도 후퇴도 있을 수 없습니다. 국가보안법을 현실에서 조금이라도 인정하는
것은 국가보안법의 억압적 본질을 송두리채 방치하는 것과 동일합니다. 만약에
지금은 '구국의 소리'를 문제삼지만 나아가 다른 것들을 차례차례 문제삼으면
그때는 어떻게 할 것입니까? '구국의 소리' 정도만 문제가 될 것이라고 보는 것은
지나치게 순진한 견해입니다. '구국의 소리'를 삭제하는 데에 동의하는 것 자체가
국가보안법의 억압적 본질을 그대로 수용하는 것이 됩니다. 그리고 '구국의
소리'는 안된다는 잣대는 도대체 누가 만든 것입니까? 공안당국 아닙니까? 그것을
수용할 생각입니까?
레드컴플렉스의 문제는 언제나 정면으로 맞받아쳐 나가야 할 문제입니다.
레드컴플렉스를 극복하지 않고서 한국 사회의 진보는 요원합니다.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매체가 생기면서 세계적으로 권력과 자본이 이 공간을
장악하려고 시도하고 있습니다. 특히 익명으로 글을 쓸 수 있는 자유게시판의
경우는 인터넷의 진보성을 핵심적으로 대변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정통부
등에서는 인터넷 실명제, 인터넷 등급제 등을 통해 인터넷 공간마저
국가보안법으로 상징되는 권력의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갖은 애를 쓰고 있습니다.
'구국의 소리' 게시물을 문제삼는 것은 그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물러서면 인터넷이 가져다 준 자유의 공간은 권력에 의해 장악되고 말 것입니다.
권력은 언제나 분리시켜 탄압해 옵니다. 나찌는 제일 처음에 유태인을 그리고
공산주의자를 그리고 기독교인을 그리고 마침내 일반시민까지 옭아매어 왔습니다.
유태인을 탄압할 때, 공산주의자를 탄압할 때 함께 맞서 싸우지 못한 사람들이
뒤늦은 후회를 해봐야 그 때는 늦습니다. 인터넷에 '구국의 소리' 게시물을
삭제하고 그 다음엔 국가보안법에 저촉되는 모든 게시물을 삭제하고 그 다음엔
모든 정권비판을 삭제하게 되었을 때 그 때 '아차' 해봐야 이미 늦은 것입니다.
또 한가지, 한국사회에는 '구국의 소리'를 조직의 지침으로 삼고 활동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습니다. 이들의 언로가 인터넷을 통해 최초로 트이게 되었는데
이를 막아버리는데 동조해 버린다면 그것은 동지에 대한 잔인한 폭력외에 아무것도
아닐 것입니다.
지금 진보넷에서 '구국의 소리'게시물을 삭제할 수 없다고 싸우는 것은 정당하고
원칙적이며 가장 정치적이고 가장 효과적인 투쟁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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