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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 4833
글쓴날 : 2001-08-28 00:00:13
글쓴이 : 문성준 조회 : 219
첨부파일 : 010825_정보통신윤리위원회폐지주장글.hwp (31050 Bytes)
제목: 불온한 정보통신윤리위원회

불온한 정보통신윤리위원회
- 상식이 통하는 사회는 정보통신윤리위원회를 원하지 않는다


민주노동당 정보통신부장 문성준


이 글을 읽게 될 독자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지며 글을 시작해 볼까 한다.

"당신은 '불온'이란 말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내게 '불온'이란 말은 무척 '불온'하다. 원래 '불온'이라 함은 온당하지 못하다는
뜻이다. 행동이나 말이 상황에 적당하지 않거나 적절하지 않을 때, 온당하지
못하다고 한다. 살아가면서 단지 상황에 적절하지 않을 뿐이거나 다소 잘못된
판단을 포함하기도 하는 행동과 생각들을 많이 접한다. 그렇지만 누군가의 삶을
직접적으로 위협하지 않는 이상 그것이, 온당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제재를 당하는
것은 합당하지 못한, 그야말로 '불온'한 상황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오직
법으로만 사람을 처벌할 수 있는 법치국가의 기본 중의 기본이다. 그럼에도 법
안에서 '불온'이란 말이 발견되는 것은, 법치국가라는 이 나라의 희극같은
비극이다. 법 집행처럼 국가에 의한 권력 행사 한가운데 '불온'이란 말이 감히
등장하는 상황은 온당치 못한, 아주 '불온'한 상황이다. 이 나라는 상식도 없어
보인다.

널리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이 시대에 '불온'한 기구 중에 하나가
정보통신윤리위원회이다. 전기통신사업법이란 법에 의해 국가가 설치한 이 기구는
인터넷과 같은 통신 공간에서 '불온 통신'을 단속하기 위한 기구이다.

김인규 교사 사건은 이 사회의 여러 가지 문제를 농축해서 보이고 있다. 그 중에
홈페이지 폐쇄와 관련된 얘기를 해 보자. 김인규 교사와 부인의 벗은 몸을 찍은
사진이 형법에서 불법으로 규정하는 음란물인지가 판단되기도 전에 김인규 교사의
홈페이지는 폐쇄되었었다. 문제의 사진만 삭제된 것이 아니고 홈페이지 전체가
인터넷 공간에서 사라졌었던 것이다.

이 사건에서 두 가지를 따져봐야 한다. 하나는 김인규 교사가 홈페이지에 공개한
사진이 학생 교육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일부 학부모와 교육청, 그에 반해 교육적
가치가 있다는 김인규 교사측과의 견해 차이를 조정하는 의미 있는 작업은 제대로
수행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정보통신윤리위원회가 일방적으로 홈페이지를 폐쇄하는
시정요구를 했다는 점이다. 정보통신윤리위원회는 '불온 통신'을 내세워 김인규
교사의 홈페이지를 폐쇄하고 사람들 사이의 팽팽한 견해차를 극복할 수 있는
자율적 논의의 싹을 잘랐다. 정보통신윤리위원회는 인터넷 공간을 돌아다니는 불법
정보를 없애는 일보다는 그 가치를 따져봐야 할 것들을 제거하는 데에 더 관심이
있어 보인다.

또 하나는 스스로 자율기구라 주장하는 정보통신윤리위원회가 김인규 교사의
홈페이지를 폐쇄한 과정에서 알 수 있듯이, 그리고 많은 동성애 사이들이 폐쇄된
과정에서 알 수 있듯이 정보통신윤리위원회는 국가 검열 기구로 활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법으로 따져보면 정보통신윤리위원회의 시정요구는 거절해도 된다. 한
마디도 표면적으로는 법적인 강제가 없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정보통신윤리위원회의 시정요구를 거절할 수 있는 배짱을 갖기란 쉽지 않다.
정보통신윤리위원회의 시정요구는 대체로 정보통신부 장관의 명령을 위한 전
단계로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정보통신윤리위원회는 사이트 폐쇄나 게시물의 삭제
등 시정요구를 한 내용을 정보통신부장관에게 꼬박꼬박 보고를 해야 하고, 보고를
할 때 시정요구를 거절한 경우 정보통신부장관에게 사이트 폐쇄 등의 명령을
내리도록 건의할 수 있다. 정보통신부장관의 명령을 거절하면 2년 이하의
징역이라는 벌칙이 있고 장관의 명령에 의의를 제기할 수 있는 구제 절차가 없기
때문에, 정보통신윤리위원회의 시정 요구는 정보통신부장관의 강제권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고 보아도 무리가 없다. 정보통신부장관은 정보통신윤리위원회의
위원들에 대한 인사권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이로써 정보통신윤리위원회는 국가
기구임이 틀림없는 데다가, 타당한 근거 없이 이 기구의 자의적인 '불온 통신'
판정만으로 인터넷에서의 정보 제공을 제한할 수 있는 위헌 기구임이 분명하다.

참으로 안타까운 점은 정보통신윤리위원회라도 있으니 그나마 음란물을 단속할 수
있다며 정보통신윤리위원회가 인터넷 순화 기능을 한다는 주장을 하는 이들이
있다는 점이다. 정보통신윤리위원회가 하는 일 중에 음란물 단속은 분명 있다.
그러나 그들이 단속하는 음란물의 범주는 진짜 음란물 범주가 아니라는 데에
문제가 있다. 김인규 교사가 자신의 홈페이지에 게시한 사진이 음란물이라는
근거가 있는가? 음란물이 아니라 '불온 통신'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진짜 음란물은
정보통신윤리위원회가 없어도 단속할 수 있다. 형법 상 음란죄가 있기 때문이다.
경찰이 음란물을 단속하기 때문에 이 분야에서 정보통신윤리위원회가 할 일은
사실상 없다.

성욕을 유발하기 위한 음란물 범주에는 들지 않지만 사람의 벗은 몸이 드러나는
사진이나 영상, 이와 비슷한 글과 같은 청소년에게 해로운 인터넷 내용물들은
단속할 필요가 있고, 이 역할을 정보통신윤리위원회가 담당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기도 한다. 그래서 이 사람들은 정보통신윤리위원회가 추진하는
인터넷내용등급제와 이를 강제하는 법적 장치들이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고
주장한다. 오히려 정보통신윤리위원회와 이 기구의 활동을 강화하는 법률들은
청소년이나 여성과 같은 사회적 약자를 보호할 수 있는 최소한의 사회적 장치의
역할을 한다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정보통신윤리위원회를 대체할 대안이 없는 한,
정보통신윤리위원회는 유지되어야 하며 정보통신윤리위원회의 부정적인 면을
하나의 부작용으로 보아야 하지 그 때문에 정보통신윤리위원회를 없애면 인터넷은
더욱 무정부적인 상태가 되어 사회악으로 변질될 수 있다고도 한다.

이러한 주장은 첫째, 국가에 의한 인터넷 검열과 합리적 규제의 큰 간격을
이해하고 있지 못하며, 둘째, 정보통신윤리위원회는 국가 검열 기구이지 자율적
규제 기구가 아니라는 점을 알지 못하며, 셋째, 국가의 검열 기구의 활동이 민간에
의한 자율적 규제를 오히려 방해한다는 상식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국가에 의한 검열은 국민들에게 자기 검열을 강요한다. 정보통신윤리위원회가
동성애 사이트에 대한 차단 의지를 보이고 있었을 때, 동성애 사이트와
커뮤니티에게 인터넷 공간을 제공했던 사업자들은 이들 운영자들에게 은근한
압박을 가했다. 동성애 사이트와 커뮤니티의 운영자들도 이러한 압박이 두려워
자진 폐쇄하고 종적을 감춘 사례가 많다. 정보통신윤리위원회의 활동은 이처럼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자에게 검열을 부추기고 사이트 운영자들에게는 자기
검열을 강요한다. 

합리적 규제라는 것은 이것과는 전혀 다르다. 인간의 심성을 파괴하는 범죄 행위가
인터넷에서 벌어졌을 때만 제재를 가하는 것이다. 어린이나 청소년에게 해로운
인터넷 컨텐츠들이 있다면, 이는 단속을 할 것이 아니라 바르게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을 깨치도록 자아의 성숙을 유도해서 해결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그들을
지도할 교사와 학부모를 충분히 교육시켜야 한다. 더 나아가 근본적인 과제는
인터넷을 단속하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성차별이 뿌리깊고 음란물로 잇속을
채우는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있음을 알아야 한다. 정보통신윤리위원회가
단속과 차단을 일삼는 행위를 하는 것을 묵인하는 순간, 우리는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놓치게 된다. '불온'하다고 해서, 야하다고 해서 차단되고 삭제되는
상황은 우리들 스스로 문제를 풀고자 하는 시도도 불온해지며 야해질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불온'한 정보통신윤리위원회가 없어져야 인터넷이 투명해진다. 스스로 판단할 수
있고, 판단을 나눌 수 있어야 문제의 원인을 찾을 수 있고 스스로 해결할 수도
있다. 떠먹여 주는 밥만 먹어서야 어떻게 성장할 수 있겠는가. 더구나 제 머리로
생각하는 성장을 바라지 않는 검열이라면 말이다. 우리의 눈과 귀를 막는다면
문제를 찾고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 상식이라면 정보통신윤리위원회는 없어져야
한다. 상식이 통하는 사회는 '불온'한 정보통신윤리위원회를 원하지 않는다.


* 이 글은 <문화연대>게 기고한 글입니다. 물론 실릴까 몰라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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