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자들이 말하듯 PICS의 등급시스템이 기존의 블랙리스트나 화이트리스트를 이용한
차단소프트웨어보다는 한결 세련(?)된 기술인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PICS는 그
태생적인 한계를 지니고 있고 그래서 저는 PICS를 바탕으로 하는 내용등급제의
도입에 찬성할 수가 없습니다.
첫째 PICS는 서버나 인터넷서비스공급자 수준에서 일반 사용자들의 특정 도메인의
접속을 제한할 수게 합니다. 따라서 PICS기반의 “자율적” 내용등급제는 경우에
따라 언제든지 “타율적” 내용등급제가 될 수 있는 것이고, GILC에서 수년 전부터
경고해오던 PICS기술을 이용한 인터넷에 대한 정부의 간섭이 바로 우리들에 닥친
현실이 된 것입니다.
개인용 컴퓨터를 사용하는 일반 사용자들이 각자 인터넷 브라우저의 등급제 기능을
사용하지 않는다 해도 피씨방, 학교, 도서관, 회사 등 네트웍이 설치되어 있는
공공장소에 PICS기반의 내용등급시스템이 적용될 가능성은 얼마든지
열려있습니다.
둘째 PICS기반의 내용등급은 전지구적 미디어로의 인터넷의 속성을 무시한
것입니다. 한 사회의 가치기준을 전지구적 미디어인 인터넷에 적용하려는 시도는
무모한 것입니다. 한국정부가 보기에 청소년에게 유해한 정보가 다른 나라에서는
전혀 다르게 인식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셋째 PICS기반의 내용등급시스템은 제삼자가 자의로 등급을 정할 수 있게 했다는
점에서 더욱 위험합니다. 해외에 기반한 유해정보(?)를 차단하기 위해 삼자등급을
한다고 하지만 그 실효성에는 많은 의문이 남을 수밖에 없습니다. 정통윤에서는
해외 유해정보 데이터베이스를 이용한다고 한 것 같은데, 무엇이 유해하고 무엇이
유해하지 않은지. 무엇이 차단되고 무엇이 어떤 기준으로 무슨 등급을 받았는지 알
수 없는 노릇입니다. 그 데이터베이스작성에 사회적 합의가 있었던가요.
인터넷상의 정보의 양은 하루가 다르게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여기에
문제가 생기지요.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해외 유해정보(?)를 일일이 수작업으로
검사하고 등급을 매길 수 있을까요? 역부족이겠지요. 아마 데이터베이스에 미쳐
오르지 못한 유해정보(?) 사이트들이 눈 더미처럼 늘겠지요. 그럼 그 똑똑하다는
로봇을 사용해 볼까요.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직 세상에 Artificial Intelligence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로봇은 복잡미묘한 Human Context를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넷째, 안타깝게도 PICS 내용등급제의 주체인 정보통신윤리위원회를 신뢰할 수가
없습니다. 오늘 들린 인터넷 내용등급제 사이트의 해외동향에는 이렇게 적혀
있더군요. “호주는 국민들의 정부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인터넷에 대한 공적
규제에 높은 지지도를 보이고” 있다고요. 전 잘 모르겠습니다. 정말 호주에서
그런지 안 그런지는. 하지만 그들도 정통윤처럼 이런저런 사이트를 자의적으로
폐쇄시키고 있을까요?
유럽을 중심으로 PICS기반 내용등급제의 연구와 논의는 계속되고 있지만 사실 그
실효성에는 아직 많은 의문점들이 남아 있습니다. 작년 미국 국회는 재정지원을
미끼로 모든 도서관과 학교에 인터넷 내용 차단 소프트웨어를 설치하도록 하는
Children’s Internet Protect Act를 통과시켰습니다. 아마도 당장의 실효성에
의문이 가는 PICS기반 내용등급제보다는 차단프로그램을 선택한 것 같습니다. 이런
일이 우리나라에도 일어날까 무섭습니다.
한 줄 만 쓰려고 했는데 또 장황하게 되었습니다. 아이고….얘가 우네요…
그럼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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