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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 5146
글쓴날 : 2001-10-13 14:36:13
글쓴이 : RedganG 조회 : 400
제목: [Digital삐라] 지적재산권이 이제 사람까지 잡는구나!

지적재산권이 이제 사람까지 잡는구나!

"글리벡"(STI571). 
초국적 제약회사인 스위스 노바티스사가 개발한 만성 골수성 백혈병 치료제의
이름인데, 최근 이 약이 불가능하게만 보이던 백혈병을 정복할 수 있는 "기적의
신약"으로 소개되면서 세계적으로 "글리벡 열풍"이 불고 있다고 한다. 물론
백혈병에 대한 글리벡의 요능, 즉 기적의 신약 또는 명약인지는 아직까지
구체적으로 검증되지 않았다. 하지만 기존의 항암치료가 어려운 환자들의
입장에서는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기에 글리벡의 효과나 부작용이 충분하게
검증되지 못한 상황에서도 이를 투여하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즉
백혈병이라는 무시무시한 병마의 고통 속에서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환자와
가족들에게 있어 "글리벡"은 "삶의 기적"과 동의어인 셈이다. 
한국 사회 역시 예외일 수 없다. 전세계에서 스위스, 미국에 이어 세 번째로
판매될 계획이라는 사실이 보도되자마자 이 약을 둘러 싼 사회적 관심이 잔뜩
고조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한국의 만성 골수성 백혈병 환자가 대략적으로만
1천 여명에 이른다니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기적의 신약을
반기거나 되찾아진 삶의 희망에 감사해 하는 분위기가 결코 아니다. 더욱이 많은
보건의료 관련 전문가들과 시민사회단체들은 글리벡과 관련된 성명서를 연이어
발표하고 있다. 왜일까?

생명도 돈으로 사는 것이 자본주의인 규칙?
이유는 지나치게 명쾌하다. 그래서 더욱 슬프지만. 글리벡은 신약으로서는 그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의 빠른 속도로 허가가 떨어져 국내에서 곧 판매될
예정이지만, 그 약 값 역시 가히 "기적적으로" 비싸기 때문이다. 
최근 언론 보도에 의하면 글리벡을 투여할 경우 한 달에 지출해야 할 약 값만
300만원에서 600만원 정도에 이를 것이라고 한다. 즉 백혈병 환자는 글리벡을 보통
하루에 4알에서 많게는 8알까지가 먹게되어 있는데, 그 100㎎짜리 "한 알"의
가격을 한국 노바티스사가 "25,647원"으로 신청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스위스의
노바티스사 본부는 한국에서 시판가가 낮게 책정될 경우 향후 다른 나라에서의
영업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판단 하에, 현재 이 가격을 고수하라는 지침을
내린 상황이라고 한다.
따라서 병마의 고통과 이를 견뎌내기 위한 경제적 고통이라는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는 평범한 백혈병 환자에게 글리벡이라는 기적의 신약은 결국
바이오테크놀로지로 무장한 최첨단 "그림의 떡"에 다름 아니다. 즉 글리벡은 약에
대한 접근성이 인간의 의학적 필요와는 별개로 돈의 소유 여부에 따라 결정된다는
현대 자본주의의 원칙을 명확하게 확인시켜주는 사례인 셈이다. 
그리고 이는 정보사회라 불리는 고도의 과학기술이 발달한 문명사회일지라도 그
과학기술과 문명의 혜택이란 사회적 다수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초국적
제약회사와 같이 이윤의 재생산과 독점을 위해 존재한다는 사실을 동시에 가르쳐
준다. "무전유죄 유전무죄"를 너머 "무전유병 유전무병"이라는 현실을.

지적재산권이라는 독점의 문화 그리고 위협받는 생명
더욱이 "글리벡"의 탄생설화를 살펴보면 현재 초국적 제약회사가 설파하고 있는
지적재산권에 근거한 독점의 문화가 얼마나 모순적인가를, 나아가 글리벡 열풍이
더 이상 안타까워할 일이 아니라 분노해야 할 일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사실 노바티스사는 상당한 비용의 연구개발비에 대한 부담을 이유로 신약 개발을
거의 포기한 상태였다. 하지만 미국의 백혈병 환자 2000명을 중심으로 FDA에 대한
탄원과 구제 운동이 진행되었고, 이 결과 글리벡은 개발과정에서부터 희귀
의약품으로 지정 받는 혜택을 누렸다. 
즉 시장자유주의의 논리를 넘어 보건의료라는 사회적 공공성에 기반하여 연구비는
물론 개발비용 전체에 대한 세금혜택에 이르기까지 각종 사회적 지원을 받은
것이다. 그리고 이 덕분에 노바티스는 신약 개발에 성공하였으며 그 개발기간 역시
15년을 3년여로 단축시키는 엄청난 특혜를 받은 것이다. 하지만 노바티스는
글리벡의 개발이 완성된 순간부터 이를 가능하게 해준 수많은 백혈병 환자들과
공공의 노력을 모두 무시한 채, 자신의 경제적 이윤만을 반복적으로
관철시키려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글리벡과 관련하여 또 다시 문제로 지적되어야 할 부분은 바로 현대
자본주의 체제에서 지적재산권 제도 자체가 가지고 있는 구조적 모순이다. 이번
글리벡의 경우에 있어서도 지적제산권 제도는 20년이라는 어마어마한 시간을
노바티스사에 보장해 줌으로써 초국적 제약회사의 무한적인 이윤과 횡포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주고 있다. 노바티스사가 글리벡에 대한 지나치게 높은 가격을
책정하고도 보험등재 철회, 일반 의약품 판매 추진 등의 협박까지 서슴치 않을 수
있는 근거가 바로 여기에 있는 셈이다. 
즉 공공의 노력을 통해 개발된 기술이 수많은 생명을 살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특정 기업의 이윤을 위해 그 사회적 기능이 크게 위축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는 특허권의 특성상 다른 제약회사가 제조방법을 스스로 개발할지라도
생산을 금지하는 배타적 권리이기 때문에, 필수 의약품에서의 지적재산권이 환자를
살리기보다는 오히려 죽음으로 몰아가는 기능을 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순진하게 휴머니즘이나 자연주의에 기대 초국적 제약회사인 노바티스사에게
"칭얼"거리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 더욱이 이번 글리벡 판매를 둘러 싼 사회적
대립은 결코 글리벡만의 문제가 아니다. 디지털에 기반하여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바이오테크놀로지, 세계무역기구(WTO)라는 거대한 굴레를 통해 날로
강화되는 지적재산권의 흐름 속에서 인간의 생명을 담보로 한 위험한 거래는 더욱
빠르게 확산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 바로 경제적 불평등에 기반한
생명 위협, 과도한 개발주의에 의한 환자의 임상실험 및 동물실험 등이 있다.
그리고 이를 반대하는 것은 결코 반과학주의가 아니며 좀더 성찰적인 문명의
발전과 형등한 수혜를 준비하고자하는 노력이다.
따라서 생명의 윤리와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를 위협하는 바이오테크놀로지의 무한
개발과 특허권의 남발, 그리고 이를 이윤으로 전환하는 지적재산권 제도에 대한
무한한 신뢰는 심각하게 제고되어야 한다. 또한 이 배후에 있는 경제제일주의도
진지한 성찰의 대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 
세계 각국에서 "People Before Profit"을 외치며, 수많은 시민들이 죽어 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 이글은 중앙일보iweekly에 게재되었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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