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감시사회와 군사문화의 알리바이가 된 '오사마 빈 라덴'
영화 <쌍둥이빌딩 폭파사건> 흥행 중
'CNN'이 제작하고 조지 부시와 오사마 빈 라덴이 열연한 영화 <쌍둥이빌딩
폭파사건>이 안방극장에서 개봉한지 한 달이 넘도록 시청률 1위 자리를 굳건하게
지키고 있다. 어떠한 사전 광고도 없이 기습적으로 전세계의 안방극장에서 동시
개봉된 이 영화가, 최근 <보복전쟁 : 쌍둥이빌딩 폭파 이후>라는 후속 작업을 통해
인기몰이를 지속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이 영화는 잔혹한 폭력성이나
불온함(미국 대통령이 전쟁이라는 인류의 재앙을 떳떳하게 부추기는 장면이
노골적으로 묘사되고 있다)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 어떠한 연령제한도 없이
광범위하게 상영되고 있다. 평소 청소년 보호라면 과다한 규제와 검열마저도 적극
지지하던 청소년 보호론자들은 물론이고, 막강한 권력의 영상물등급위원회,
청소년보호위원회, 정보통신윤리위원회마저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못한 채 마냥
침묵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이 영화에 대한 비평 역시 각계 각층의 수많은 평론가들을 통해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다. 먼저 절대 다수의 보수주의 평론가들은 그 흔하데 흔한 휴머니즘과
자존심도 내팽개친 채 한국의 맹목적인 군사지원까지 주장할 정도로 미국의 눈치를
보고 있다. 물론 그 근거는 오직 '테러 퇴치'이다.
다음으로 조금이라도 양심이 남아 있는 평론가들이 선택한 논리는 바로 '테러
반대'와 '전쟁 반대'라는 양비론이다. 이들 주장의 핵심적인 배경은 역시
휴머니즘에 입각한 평화주의이다. 여하간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교과서적
이론인 셈이다.
미국테러와 과학기술의 군사화
이렇게 온 세상이 오사마 빈 라덴과 조지 부시의 전쟁 영화를 즐기고 있는 사이에,
이번 사건은 디지털 패러다임을 중심으로 하는 현대 과학기술에 있어 전혀 엉뚱한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즉 여담처럼 이야기되고 있는 "이슬람 테러 조직들이
포르노사이트에서 암호로 의사교환을 해왔다", "인터넷의 발달을 통해 테러범들의
범죄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였다" 등의 담론 속에는 바로 과학기술의
군사화라는 의도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즉 민간학살을 피해갈 길이 없는 미국의
보복전쟁이 전폭적으로 지지를 받고 있는 현재의 분위기는, 빈 라덴으로 대표되는
테러 세력이 ('문명의 충돌'이라는 이데올로기와는 별개로) 전자감시사회와
군사문화의 확산을 위한 알리바이로 활용되는 것을 묵인하고 있다.
단적으로 이미 테러 발생과 동시에 미국 정부는 해묵은 '클리퍼 칩 논쟁'(Clipper
Chip, 인터넷의 암호인증체계에서 미국 정부가 모든 암호에 대한 마스터 키를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언급하며, 이에 대한 연방수사국(FBI)의 권한 강화를
주장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미국 정부는 인터넷에 대한 현재의 감시와 규제
시스템을 더욱 강화할 방침이라고 발표하였다. 이는 세계 최고의 감시기술을
자랑하며 개인은 물론 여타 국가에 대한 프라이버시 침해를 일상적으로 반복해
왔던 미국 정부가 기존의 '에셜론'(ECHELON, 미국이 주도하는 전지구적
도감청시스템 프로젝트)과 '카니보이'(FBI의 인터넷 감청 프로그램)는 물론이고
더욱 발달된 과학기술을 통해 전지구적 전자감시체제를 강화하겠다는 야심에 다름
아니다.
물론 이번 사건을 과학기술의 군사화로 연결하려는 야심은 미국 정부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한국의 IT업계도 벌써부터 '보안'이라는 군사적 개념을 동원하여
각종 위치추적 프로그램, 감시 소프트웨어 기술 시장의 활성화를 예측하며 들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얼마 전 대전에서 있었던 '벤처 국방마트 2001'처럼 국방
관련 벤처기업들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위성 및 레이더 영상을 이용한 전략 및
정보작전 시스템, 발칸 및 자주포 사격 시뮬레이터 등 디지털 패러다임을
군사기술화하고 경제적 수익을 거두는 것에 자긍심마저 느끼고 있는 듯하다. 그
기술이 누구의 생명을 빼앗을 것이며, 그 돈의 대가로 우리가 부담해야 할
전자감시사회와 전쟁의 위험에 대해서는 어떠한 양심적 고민도 없이 말이다.
군사문화와 과학기술의 위험한 동거
사실 기간 인류의 역사에서 군사문화는 과학기술과 결코 분리될 수 없는 길을 걸어
왔다. 예를 들어 제2차 세계대전의 군사연구 경험, 그 중에서도 특히 작전 연구,
전자공학, 레이더, 원자에너지 등의 영역에서 진행되었던 대규모 프로젝트들은
현재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군수산업의 거대자본화와 군산복합체라는 지배사회의
동맹관계(정치, 군부, 산업계의 권력구조)를 형성하였다. 또한 1957년 소련이
최초로 인공위성 스푸트닉 호를 발사하면서 서구 사회에 준 충격은 많은 국가로
하여금 군사기술의 발달을 위한 정부와 대학간의 산학협동체제를 구축하고,
과학자들과 엔지니어들을 집단적으로 동원하도록 하였다. 심지어 미국은 1960년대
중반까지 매년 평균 15% 정도의 연구개발비를 증액하였으며, 이중 대부분을 군사,
핵, 우주개발 부문에 쏟아 부었다.
좀 더 가까운 시기에 발생한 걸프전은 CNN이라는 스타와 스마트 전쟁이라는
이데올로기를 배출하였다. 여기서 앞의 최첨단 미디어 기술은 시뮬레이션의 위력을
통해 전쟁의 스팩타클화(마치 게임을 보는 듯한)를 조장하였고, 이는 스마트
전쟁이라는 개념을 통해 전쟁을 합리화하고 미화시키는 이데올로기를 형성하여
자연스럽게 미국의 군수산업과 무기거래상들의 배를 불려주었다. 창고에서 썩고
있던 미사일들이 일순간 시뮬레이션 게임의 옵션처럼 아무런 망설임 없이
소비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군사기술의 산업화를 통한 현대 과학기술의 이기가 그 기술로
인해 감시당하고 고통받고 죽어 가는 사람들을 결코 위안할 수 없다는 점이다.
수많은 전쟁과 냉전체계로 인해 가중된 군비경쟁은 바로 보통 사람들의 경제적
고통을 의미하는 것이고, 이 성과물은 언제든 인류를 파멸로 이끌 수 있는 잠재된
위험 요소로 현존하기 때문이다. 즉 이는 과학기술과 군사문화의 잡종화 과정이 그
현란한 수식어와는 달리 평화, 정의구현, 인류공존이라는 본질적인 문제 해결과는
거리가 멀다는 진실만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준다. 그리고 과학기술의 군사적 전유,
국방 부분의 기술확산에 있어 핵심적인 근거였던 '민군겸용'(dual use)이라는
개념이 얼마나 위험한 논리이며 허구적인가를 잘 증명해 준다.
다시 <쌍둥이빌딩 폭파사건>의 평론으로 돌아가자. 테러는 사라져야 하지만 전쟁도
결코 용납될 수 없다. 하지만 여기서 전제되어야 할 평화주의는 막연한 양비론이나
단순히 "잘 지내보자" 수준이어서는 곤란하다. 왜냐하면 현시기 진행되는
과학기술의 군사화는 철저한 전자감시사회를 구축하는 과정이며, 동시에 우리의
목숨을 판돈으로 하는 위험한 놀음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전자감시사회와
군사문화는 영원히 테러와 전쟁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해 줄 수 없다.
따라서 이 영화의 교훈은 "세계 체제의 경제 정치 문화적 불평등을 조장하고 있는
미국의 패권주의 반대, 국가안보 패러다임에서 인간안보 패러다임으로의 전환,
군사기술개발예산의 민간 용도로의 전용을 통한 전지구적인 군축 등 적극적인 평화
만들기와 과학기술의 재정치화가 더 이상 미루어져서는 안된다"라는 것이다.
* 이글은 중앙일보iweekly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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