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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견 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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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 5318
글쓴날 : 2001-11-10 01:01:54
글쓴이 : 이동하 조회 : 2919
제목: 엑스죤에 대한 최후통첩에 부쳐...

나찌 치하의 수용소에서 많은 유태인과 집시들이 죽어갈 때, 많은 학자들의 저서가
거리에서 불태워질 때, 이런 끔찍한 일을 불러 일으킨 장본인은 히틀러나 그의
비밀경찰, 혹은 괴링과 같은 자들이 아니었습니다. 그 장본인은 자신의 이웃들이
'유태인이다', '집시이다', '공산주의자다', '불온한 사상을 가진 자다' 라는
이유로 차별당하고, 어디론가 끌려갈 때에도, 그런 차별과 억압에 대해 둔감했던
독일인들이었습니다. 아니, 그 차별받는 부류에 자신이 속하지 않음을 위안으로
삼고 도리어 차별을 공공연히 지지했던 자들이었습니다.

권력의 억압이 불러일으키는 공포에 순응함으로써, 결국은 자신과 다를 것이 전혀
없는 다른 사람들을 우습지도 않는 이유로 제거하는 데 동참하는 이런 일은 비단
나찌 독일의 일만은 아닙니다. 어디에서건, 언제든지 일어나는거죠.

제가 인터넷을 여행하다가, 우연히 통신질서확립법에 대해 알게되면서, 이
게시판에서만 활동한 지 이제 1년 반이 되어갑니다. 그동안 인상깊었던 다른
분들도 계셨지만, 지금은 아무도 안 남아있군요... 아마도 아직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계시리라 생각하지만... 그래도, 전 제 목소릴 내는 것을 포기할 순
없었습니다. '이건 진실로 내가 직면한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드디어, 인터넷내용등급제가 현실화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무언가 말하지 않을까,
하고 기대도 했었습니다. 그러나, 정부의 이 사오정 정책을 저지하기에는 여전히
소수의 목소리만 메아리치고 있군요.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가십거리조차 되지 않는 상황에 간혹, 내가 할 수 있는 활동의
영역에서 뭔가 부족한 게 없었을까, 아니면, 내가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는 방식이
잘못되었을까, 아니면 내가 뭔가 틀린 생각을 하고 있는 건가 하고 반성해보기도
합니다. 부끄럽게도 제 여자친구도 아직 설득하고 있지 못하니까요...

엑스죤 사이트에 가보니, 정통윤의 협박문서와 함께 사이트를 폐쇄하겠다는
엑스죤의 공지만이 남아있더군요. 만약, 인터넷 세계의 그 어떤 사이트나
페이지라도, '음란'하다거나, '불온'하다거나, '퇴폐적'이라거나 하는, 지극히
주관적 취향의 문제를 빌미로 폐쇄되거나, 벌금을 물거나 하는 사태가
발생한다면(이미 그렇게 되고 있었죠....), 그건 (미안하지만) 우리 모두의
책임입니다.

이런 차별과 억압을 가능하게 한 건, 사오정같은 정부도 아니고, 고지식한
관료들도 아니고, 타인의 고통과 입장을 자신의 것으로 느끼지 못하는, 무심한
우리 모두들입니다. (근본적으로 불합리할 수 밖에 없는) 차별을 보고도 방관하는
사람들에겐 그 자신 차별받는 상황에 처할 지라도 다른 사람의 도움을 기대할
자격이 없습니다.

성에 대해서, 육체에 대해서, 사랑에 대해서, 동성애에 대해서, 이성애에 대해서,
혹은 다양한 성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청소년에게 유해하다면, 이 글을 쓰고
있는 저도 청소년에게 유해합니다. 최소한 내가 아는 범위 내에서 성과 육체와
무관한 생활세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건전한 성과 그렇지 않은 성이라는 구분
또한 그 아무런 근거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아니아니, 우리는 그 구분의 근거를
따질만한 여유조차도 보장받지 못하는 실정이죠.

이제 제 작은 홈페이지도 폐쇄해야 할 지를 심각하게 고민해봐야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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