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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 5499
글쓴날 : 2001-11-22 13:52:26
글쓴이 : 이성우 조회 : 888
제목: [흔적] 명동성당 릴레이노숙단식 30일째 투쟁 소감

대단히 개인적인 글이기는 하지만, 그냥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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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내 방이었다. 
그게 좋았다. 
성당의 종은 24시간 동안 꼭 네 번 울었다. 
초저녁에 걸린 초승달이 지고 
첨탑 아래 걸린 시계는 달처럼 환하게 빛났다. 
언제 이토록 느긋한 심정으로 
한 곳에 퍼질러 앉거나 누웠던 적이 있었던가. 
삭발, 단식, 점거, 천막투쟁으로 이어진 세월, 
96년 이래의 우리 삶이었다. 
하룻밤의 노숙과 단식이라고 하기엔 사치스런 
겨우 두끼의 밥 굶기는 
60일의 짧지 않은 투쟁의 여정에서 
그냥 육십분의 일의 몫이었다. 
비장함이라거나 
단호함이라거나 
처절함이라거나 
그런 것은 크게 없었다. 
몇 장의 사진과 인터뷰, 그것도 늘 그런 정도였고 
이제부터 싸움은 시작이다, 하는 말을 나는 참 싫어하지만 
이 싸움은 정말로 오래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오래 간다, 그것은 
사람들한테 이 문제가 공유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농성장에서 어떤 기사를 보았더니 
지문만 찍으면 주민등록등본이 자동발급되는 
이를테면 자판기 같은 것이 나왔다고 하는데, 
세상에, 지문 따위 아무렇지도 않게 
찍어대는 사회, 개인의 주민등록번호며 신상명세서가 
붕어빵 봉투로 나다니는 사회, 여기에서 
누가 나를 일상적으로 감시하고 
나로부터 세상으로 연결된 모든 길들을 
정부가 모조리 차단하고 있다고 해서 
그게 무슨 큰일이 되겠는가. 
그래도 싸움은 계속된다. 
언제나 저항은 아름답고 싸움은 진지하다. 
오래 가야 할 싸움일지라도 
오랫동안 지녀온 우리들의 덕목, 열정과 헌신과 
세상에 대하여 끝간 데 모를 애정으로 
사람들은 지금 여기 이 땅에서 
끝없이 싸우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30일, 누군가는 맨몸으로 눈을 맞겠구나, 
별도 보이지 않은 서울의 밤하늘 
거기에서 나에게로 달려오는 눈송이들이 보인다. 
점점이 커진다. 
사람들의 얼굴만치 커졌다. 
여러 사람들이 이 골목 저 골목에서 나타났고, 
눈사람이 완성되는 순간처럼 
어느 순간 시계가 환해지면 내 동지들이 거기에 있었다. 
술라 이중엽님이 그렇게 왔다 갔고, 
을지로의 레코드 가게를 뒤지고 있던 진숙경 기자가 
영화잡지 한권과 면장갑 하나 사주고 갔다. 
황보연 기자는 임신 중이라서 주로 내근이었는데, 
그 다음날 사진을 곁들인 기사로 만남을 대신했다. 
어두워지자 
바람처럼 마당님이 달려왔고, 
그는 푸소님의 감기몸살 소식과 
지금은 미국에 살고 있는 김혜정 사부의 
일시 귀국 소식을 함께 갔고 왔다. 
혜화동에서 소고춤을 배우고 있던 김혜정은 
끝나자마자 성당으로 달려왔다. 
노동넷의 이용근 대표, 김승만 국장, 
문화연대의 선용진 간사 
인터넷 대자보의 이창근 대표와 
붕어라고 자기를 소개한 신세대 활동가와 
저녁 내내 자리를 함께 했던 민주노동당 문성준 정보통신부장, 
이렇게 여러 동지들이 오고 갔고, 
민주노총의 최세진 부장이 
식사 시간 빼고는 내내 나와 함께 있었다. 
참, 늦은 밤에 
양경규 위원장이 들이닥쳐서 
감옥에서의 일상과 우리네 일거리들에 대해서 
도란도란 속삭이듯 수다를 떨다 자정이 지나서 갔다. 
이상한 일이지, 감옥에 갔다 온 사람들은 하나같이 
거기에 가장 잘 적응할 사람이 이성우라고 한다. 
웬만하면 거기 가야 좀 쉴 수 있을 거라고 한다. 
전향서 거부하고 한 사십년쯤 견딜 거라고 단언한다. 
나는 고문 한 번 당해본 적 없는데, 어떻게 장담하나. 
자정에 이르는 12시간 동안 
여러 동지들의 전화와 문자메시지가 왔다. 
참, 이미 6년 전에 우리 연구소를 떠나 교수가 되어버린 
한 동지가 목포에서 전화를 걸어와 
여전히 열심히 살고 있느냐고, 나를 믿는다고, 격려했다. 
오래된 수첩에서 우연히 내 이름을 발견했다고 했다. 
나는 행복했다. 
동지들은 멀리 혹은 가까이서 
기꺼이 나의 침대와 이불이 되어 주었고, 
그들로 하여 찬 대기는 
콧등에서 잠깐 회오리 바람을 일으켰을 뿐 
금방 따뜻해지며 내 폐부를 들락거렸다. 
명동에서 
세상은 내 방이었고, 
내 방은 하늘과 땅, 모든 곳으로 열려 있었다. 
나는 참 오랜만에 
24시간 동안의 완벽한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 모두의 투쟁이었다. 
살아서는 결코 끝나지 않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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