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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 5607
글쓴날 : 2001-11-29 19:20:33
글쓴이 : 들레꽃 조회 : 3395
제목: [글] 정부의 검열이 청소년을 보호할 수 있을까?

* 교육비평에 기고한 글입니다. 

정부의 검열이 청소년을 보호할 수 있을까?

장여경 (진보네트워크센터)

1. 들어가며

지난해 12월부터 발생하기 시작한 소위 '자살 사이트 사건'은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올 2월에는 전남 목포와 충북 청주에서 평소 자살 사이트를 자주
접속했던 것으로 알려진 초등학생과 중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또
대구에서는 인터넷을 통해 폭탄제조법을 배운 고교생이 시민운동장 주변에 놓아둔
사제폭발물이 폭발하는 바람에 시민 2명이 다쳤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사건은
인터넷 게임에 심취한 중학생이 초등학생 동생을 살해한 사건이다. 그는 경찰에
"살인을 하면 어떤 느낌인지 알고 싶었다. 그래서 가장 가까이 있는 동생을 살해
대상 1호로 지목했다"고 털어놓았다고 한다. 참으로 우리 청소년들은 중대한
위험에 처해 있는 것 같다. 우리가 받은 충격은 마땅하게도 진지한 논의로
이어져야 한다. 무엇이 그들을 위험에 처하게 했는가. 그리고 대책은 무엇인가. 
그러나 여기서, 나로서는 믿을 수 없는 비약이 일어났다. 이 모든 사건들의
원인으로 인터넷이 지목된 것이다. 즉, 인터넷이라는 미디어가 청소년들을
자살하고, 폭력을 쓰고, 살인하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문제의 원인에 대한
비약은 문제의 해법에 대한 비약으로까지 이어진다. 청소년을 보호하기 위하여
정부와 경찰이 인터넷을 강력하게 단속하기 시작한 것이다. 정보통신부와
정보통신윤리위원회는 문제의 사이트들을 모두 폐쇄하였다. 국무총리가 직접 나서
자살 사이트는 '우리 고유의 미풍양속을 파괴하는 반사회적 범법행위'라며
정보통신부, 법무부, 검·경 등 관련 기관에 사이트 운영자에 대한 형사처벌 등
특단의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으며, 서울지검 컴퓨터수사부는 자살 사이트 등
각종 '반사회적' 사이트에 대해 처벌할 수 있는 법률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검찰은 자살 사이트 등 '반사회적' 사이트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며 컴퓨터
범죄를 전담하는 인터넷범죄수사센터를 본격 출범시켰다. 그리고 마침내 정부는
11월 1일부터 인터넷상의 청소년유해매체물을 PC방, 학교, 도서관 등에서
차단소프트웨어로 차단하는 것을 골자로 한 '인터넷내용등급제'를 시작하였다.
그들의 말에 따르면 위험한 인터넷을 청소년들로부터 격리시킴으로써 청소년은
보호될 것이다.
그런데 그들의 이 모든 분주함이 정말로 청소년을 보호하기 위한 것일까? 여기
정부와 정보통신윤리위원회가 생각하는 '청소년 보호'의 한 측면을 살펴볼 수 있는
사례가 있다. 지난 6월, 정보통신윤리위원회는 학교를 자퇴한 청소년들이 운영하는
온라인 커뮤니티인 [아이노스쿨](http://www.inoschool.net)에 대하여 폐쇄 조치를
내렸다. 이 사이트가 '학교에 대해 너무 비판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이
커뮤니티의 운영자는 15살이고 스스로가 학교를 자퇴한 청소년이기도 하다. 그는
'학교밖의 길을걷는 사람들'을 위한 공간의 필요성을 느껴 사이트를 개설했다고
하며 정보통신윤리위원회의 폐쇄조치가 이들을 소외시키는 것이라고 비판하였다.
지난 7월, [아이노스쿨]은 새로운 서버를 구해 운영을 재개하면서
정보통신윤리위원회의 결정에 대한 이의신청을 제출하였다. 그러나
정보통신윤리위원회는 "자퇴·가출의 유도 및 그 부정적 파급효과는 여전히
우려된다"는 이유에서 이의신청마저 기각한다. 
우리는 자살 사이트의 충격 때문에 잊고 있었던 상식적인 질문들을 제기해야만
한다. 인터넷이 청소년들의 자퇴와 가출을 유도하는가? 인터넷이 청소년을
자살하고 살인하게 만드는가? 그리고, 인터넷의 차단이 청소년을 보호할 수 있을
것인가?

2. 인터넷 통제를 위한 명분으로 동원된 청소년 보호 이데올로기

사실 자살 사이트 소동은 우리 사회가 청소년 문제에 대처하는 데 매우 무능하다는
사실만을 보여줬을 뿐이다. 자살 사이트 사건 이후 언론과 경찰은 자살, 폭탄,
음란, 언어 습관에 이르기까지 오늘날 남한 사회에서 발생하는 모든 문제의 원인을
인터넷에서 찾기로 결심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자살 문제는 자살 사이트 사건
이전에 이미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사회 문제로 부각되고 있었다. IMF 이후
경제난과 실업으로 자살이 증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청소년들의 자살
원인으로 입시 부담 외에 왕따, 학교 폭력 문제가 지목되면서 이에 대한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었다. 자살이 사회적 문제라면 자살 문제에
대한 접근 역시 사회적으로 이루어져야 마땅했을 것이다. 그러나 자살 사이트 사건
이후 기존의 이런 모든 진지한 접근은 주변화되었다. 자살한 사람이 자살 사이트에
접속한 것이 밝혀지기만 하면 모든 자살의 원인은 자살 사이트로 환원되었다.
하긴, 가정이나 사회가 문제의 원인이라기 보다는 자살 사이트가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 훨씬 간편하다(?). 문제의 원인 만큼이나 문제의 해법도 간단하게
등장했다. 차단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쉬운 해답이 될 수는 있어도
문제를 사회적으로 해결하는 데는 아무런 관심이 없는 해법이다. 아니, 오히려
문제의 본질을 은폐한다.
청소년의 폭력과 자살을 둘러싼 사회적 맥락에 대한 해석은 '의도적으로'
배제되었다. 그것은 이 사건 자체가 인터넷의 정치 속에서 발생한 것이기
때문이다. 인터넷의 통제권을 누가 쥘 것이냐를 둘러싼 싸움이 이제 막
시작되었고, 정부와 경찰은 이러한 극단적인 사례들을 통해 인터넷에 대한
자신들의 통제권을 정당화시키려고 한다. 청소년 보호 논리는 청소년들을 오히려
소외시키면서 단지 통제를 위한 명분으로서 동원된 것이다. 그들은 청소년
보호에는 기실 별 관심이 없다.
인터넷의 '나쁜 것들'은 인터넷이 창조해낸 것일까? 아니라면, 어째서 인터넷
표현들이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가? 근대사회 이후 인류는 '표현의 자유'를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기반으로 합의해 왔다. 그런데 인터넷의 등장 이후 표현의
자유는 가장 논쟁적인 주제로 재등장한다. 인터넷의 무엇이 표현의 자유를
위협하는가? 자살 사이트, 폭탄 사이트와 같은 청소년에게 유해한 내용들이 표현의
자유를 위협하는가? 아니다. 표현의 자유를 위협하는 것은 오히려 고전적인
것들이다. 제 몫을 놓치지 않으려는 국가 권력과 자본의 기득권은 인터넷의 기술적
특성마저 거슬러 자신들이 희구하는 대로 인터넷의 구조를 재편하고자 한다.
여기서 인터넷이라는 미디어에 대한 '해석' 싸움이 발생한다. 기술적인 면에서만
보자면, 인터넷은 인류 역사상 가장 완벽한 표현의 수단이다. 누구나 비용이나
공간의 물리적인 한계 없이 자유로이 표현하고 출판할 수 있게 되었다. 편집자의
개입은 최소화되었다. 그 전파 속도와 범위는 어떤 매체보다 신속하고 넓다.
인터넷으로 인하여 우리는 뚜렷히 알게 되었다. 지금까지의 표현의 자유는 선언
뿐이었던 것이다. 선언과는 별개로, 표현의 물적 수단은 줄곧 언론과 권력의
것이었다. 이 권력의 불균형은 인터넷의 발명 이후 급격한 변화를 맞는다.
과거에는 편집자에 의해 선택되는 엄격한 사실 정보와 투철한 예술혼만이
'표현'으로 인정되었지만, 인터넷의 등장 이후 아래로부터 직접 생산되는 표현들 -
그래서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힘들고 가볍고 거친 표현들이 등장한 것이다. 이것은
인류가 역사상 처음으로 '날 것 그대로의 표현'을 만나기 시작했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바로 이것이 문제로 등장한 것이다. 모든 종류의 표현이 기술적으로
가능하다고 했을 때 규제는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가? 누구에 의해? 어떤
기준으로? 
여기서 국가 권력은 자신들의 기준에 따라, 자신들이 규제를 하고자 한다. 그리고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의 강력한 저항이 이에 맞서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자유권을 둘러싼 싸움만은 아니다. 최근 몇 년 간 인터넷의
내용규제를 둘러싸고 정보통신부와 사회단체 간에 일어난 갈등은 새롭게 등장한
미디어의 내용규제 모델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갈등이다. 인터넷의 등장 이전까지
대표적인 내용규제 모델은 공중파방송의 내용규제모델과 서적의
내용규제모델이었다. 공중파방송은 침투적 특성을 가지고 있고 가족이 함께
시청한다는 이유로 규제 기준이 엄격하다. 또한 전파가 희소하다는 의미에서
규제의 주체로서 정부의 행정적 권한을 폭넓게 인정해 왔다. 반면 서적에 대한
내용규제 모델은 문자해독력과 내용의 해석능력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수용자의
판단 권한을 존중해 왔고, 최소한의 규제 기준을 적용해 왔다. 즉 '불법'적인
내용이 아니라면 출판의 자유를 폭넓게 인정해 온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
정부처럼 인터넷에서 '불법'을 넘어서 '불온'과 '유해'한 내용을 포괄적으로
규제하는 내용규제 모델은 기존에 공중파방송에 적용되어 온 규제 모델이다.
정부는 인터넷에 공중파방송의 규제 모델을 적용하여 정부의 행정적인 권한을
폭넓게 인정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고전적이면서도 무난한 '청소년
보호'의 명분을 들이대기 시작했다. 그러나 인터넷은 당연히 방송과 다르다.
인터넷은 방송처럼 채널을 틀면 내용이 쏟아져 나오는 것이 아니라, 마치 책처럼,
이용자가 노력을 들여야 내용에 대한 접근이 가능한 매체이다. 인터넷이 방송처럼
엄격한 기준으로 내용을 규제당해야 하고, 또 방송처럼 정부가 규제해야 한다는
것은 분명한 비약이다. 인터넷의 내용규제는 사회적 토론과 합의 속에 형성된,
매체 특성에 맞는 합리적 규제 모델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 안타까운 점은
일련의 자살 사이트·폭탄사이트 등과 같은 '인터넷의 위험성'에 대한
센세이셔널리즘이 인터넷 내용규제 모델에 대한 사회적 토론조차 가로막아 왔다는
것이다. 
청소년 보호는 정말로 청소년을 보호하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신자유주의적인
탈규제화가 방치하기 시작한 공적 영역에 대한 사적 통제의 수단으로 강력하게
대두되고 있다. 즉 과거의 통제가 직접적이고 공적이고 정치윤리적인 것이었다면,
지금의 통제는 시장에서 사적인 방식으로 사회윤리적인 가치에 대한 것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청소년 보호 논리는 이를 위해 동원된 명분이다. 정말로
청소년을 보호하고 싶다면, 우리 사회가 청소년들의 노동 착취와 성 착취를
근절하기 위한 법과 제도를 어느 정도로 갖추고 있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물어봐야
한다.
물론 지금 인터넷에는 여성에 대한 사이버 성폭력이나 청소년에게 유해한 내용이
존재한다. 그러나 이 내용들은 우리 사회에 여성과 청소년과 같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폭력이 많은 것과 같은 이유에서 존재한다. 즉 그것은 현실 사회의 문제이며
인터넷이나 매체의 문제는 아닌 것이다. 마찬가지로, 인터넷에서 이러 한 내용들을
규제하지 못하는 이유는 현실 사회의 법과 제도가 여성과 청소년과 같은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에 충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청소년들에 대한 성착취와 노동착취
문제가 날로 심각해지는 상황에서, 청소년 보호가 '애들이 보지 말아야 할 것'을
지정해주는 것으로 그치면 된다는 매체 규제 위주의 발상은 청소년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뿐이다. 청소년에게 신체가 노출되거나
성행위가 담긴 표현물을 보여주지 않는 것으로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는 어린
청소년들의 낙태와 미혼모 양산의 문제가 해결될 것인가? 19세 미만까지의
원조교제는 엄단하는 시늉을 하면서 20세 이후의 매매춘은 솜방망이로 처벌하는
현행 법과 제도 하에서 인터넷만 규제한다고 과연 원조교제가 사라질 것인가?
의무교육 이후 방치된 청소년과 공교육이 책임지지 못한 자퇴, 가출 청소년들이
일찌기 노동시장에 뛰어들고 있는데 사회성이 있는 서적들을 청소년에게
유해하다고 하여 접촉을 금지하는 것이 청소년을 보호하는 방법인가? 문제 해결의
방법은 인터넷의 규제에 있는 것이 아니다. 현실 사회의 법과 제도를 정말로
엄격하게 사회적 약자의 입장에 맞추어 검토하고 개선하는 것이 필요하다. 

3. 신종 검열, 기술 검열, 인터넷내용등급제

인터넷에서 청소년유해매체물은 정보통신윤리위원회에서 심사하고 지정한다.
그리고 청소년유해매체물로 지정되면 청소년들의 접근을 차단해야 할 의무를
갖는다. 그러나 청소년유해매체물에 대한 정보통신윤리위원회의 판단 기준은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다. 특히 정보통신윤리위원회의 청소년유해매체물은 청소년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청소년을 소외시키고 사회로부터 격리시키고 있다.
여기 몇가지 사례가 있다. 지난해에 정보통신윤리위원회는 팬클럽 사이트의
회원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를 주인공으로 하여 올린 창작물, 소위 '팬픽'을
음란하고 동성애적이라 하여 일제히 단속하고 폐쇄시켰다. 그러나 청소년들은
오히려 정보통신윤리위원회가 자신들의 창작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강력하고 조직적인 항의 활동을 전재하였다. 청소년들의 항의 글이 쇄도한
정보통신부 홈페이지는 한때 접속 불능에 빠지기도 하였다. 그러나 청소년을
보호하기 위한 역할을 자임하고 나선 정부 관리들은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는커녕 이들이 '훌리건'이며 '어글리 코리안'이라고 논평하였다.
가장 큰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동성애'에 대한 것이다. 현행 청소년보호법과
정보통신윤리위원회는 동성애를 변태성행위로서 그 내용의 음란성 여부와는
상관없이 무조건 청소년유해매체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 6월 참세상
방송국과 인터뷰한 청소년 동성애 사이트의 운영자는 "청소년 동성애 사이트가
생기기 전에는 이 세상에서 청소년 동성애자는 나밖에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곳은 우리 이야기를 하는 공간이다. 우리는 지금 행복한데 왜 이걸 깨뜨리려고
하는가? 우리가 우리를 표현할 수 없고 모일 수 없게 만들어버리면 우리는 이
자리에서 무너진다"라고 주장을 하여 많은 이들의 공감을 낳았다. 누가 이들의
목소리를 억압하는가? 인터넷이? 아니면 정부가?
청소년유해매체물의 기준에 대한 사회적 토론과 당사자인 청소년들의 목소리가
철저하게 배제되는 상태에서 최근에는 청소년유해매체물을 보다 완벽하게(!)
규제하기 위한 기술적인 방식이 등장했다. 인터넷내용등급제가 그것이다. 정부는
오는 11월부터 국내의 청소년유해매체 사이트에 픽스(PICS)라는 표식을 하여 차단
소프트웨어로 차단하도록 하였다. 이 차단 소프트웨어는 PC방, 학교, 도서관에
널리 보급될 예정이다. 그런데 정부의 차단 소프트웨어는 등급을 달지 않으면
차단하는 것을 기본(default)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모든 홈페이지 운영자는
자신의 홈페이지가 정부의 차단 소프트웨어에 의해 혹시라도 차단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청소년에게 유해함' 혹은 '청소년에게 유해하지
않음'이라는 표식을 달아야만 한다. 자신의 홈페이지가 성적으로, 언어적으로,
정치적으로 청소년에게 유해한지 아닌지에 대하여 정부의 기준과 늘 비교해야만
하는 것이다. 더욱 큰 문제는 기술적인 등급제가 가지고 있는 위험성이다.
일괄적인 방식의 차단 소프트웨어의 보급은 PC방, 학교, 도서관 등의 인터넷
접속점에서 동성애 사이트 등 청소년유해매체물로 지정된 홈페이지에 대한,
청소년뿐 아니라 성인들의 접근도 차단할 것이다. 정부는 해외의 인터넷에
대해서는 정부가 청소년유해매체물의 여부를 판단하고 픽스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밝히고 있어 많은 해외 인터넷들도 차단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인터넷내용등급제는 기존의 권위적인 검열과 달리, 시장에서, 기술적으로
이루어지는 내용 규제이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이것을 '검열'이라고 불러야
하는지에 대해 혼란해 하고 있다. 정부는 기술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인터넷내용등급제가 자율적이며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규제 방식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법에도 '청소년들에게 유해하지 않은 홈페이지만 유통하라'는 노골적인
문구는 없다. 그러나 이 자율적 규제는 뉴미디어의 특성상 어찌할 수 없는 필연에
의하여 등장한 신종 검열이다. 공권력이 국경도 없는 인터넷의 수많은 컨텐츠를
과거와 같이 '사전에' 빠짐없이 규제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그들은
'자율적 규제'를 발명해 낸 것이다. 여기서 자율은 사적인 방식, 그리고 시장의
방식을 의미한다. 그리고 시장의 뒤에는 '청소년 보호'에 대한 형사 책임 - 철권을
숨긴 정부가 숨어 있다. 이것은 과거보다 더욱 교묘하고 강력한 검열이다.
신자유주의적인 시장과 국가 권력이 자율이라는 이름 하에 결탁한 것이다.
신자유주의는 검열조차 '자율'의 이름이라는 이름 속에 철권을 숨기고
민영화시켰다. 지금 인터넷의 검열이 가고 있는 방향은 인터넷만큼 진보한
'검열'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등장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인터넷내용등급제를 시행한 이후 실제로 일어나게 될 일을 가상시나리오로
꾸며보면 다음과 같다.

2002년 진보여고 양호교사인 김인교 교사는 개인적으로 청소년을 위한 성교육과
피임 교육 사이트를 개설한 뒤 이를 운영하였다. 청소년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자세한 설명과 그림을 덧붙였다. 그러나 그는 개설 직후 정보통신윤리위원회로부터
"청소년에게 유해하다"는 판정을 받았고 2년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이하의
벌금의 형사처벌을 받지 않기 위하여 "청소년에게 유해함"이라는 표식을 달아야만
했다. 그런데 등급을 달고서부터 이 사이트의 교육대상인 청소년들의 접근이
차단되었을 뿐 아니라 PC방과 학교, 도서관에 광범위하게 보급된
정보통신윤리위원회의 차단소프트웨어로 인하여 일반인들조차 접속할 수 없었다.
이에 자세한 소명서를 덧붙여 절차에 따른 이의를 제기해 보았지만 과거
아이노스쿨이나 엑스존의 경우처럼 애초 유해 판정을 내린 정보통신윤리위원회는
이의신청 역시 기각하였다. 

인권대자보(가칭)라는 청소년동성애인권운동단체는 동성애가 청소년에게
유해하다는 정보통신윤리위원회의 기준에 따라 홈페이지가 청소년유해매체물로
지정되었다. 이에 이 단체는 즉각 항의를 하는 한편 청소년이 이 홈페이지의
정보에 접근하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하여 해외 단체의 도움을 받아
홈페이지를 해외로 이전하였다. 그러나 몇달 후 정보통신윤리위원회의 기준에 따라
해외 인터넷도 차단하는 차단소프트웨어들이 확산되자 국내의 어떤 PC방, 학교,
도서관에서도 이 단체의 홈페이지에 접속하는 일이 불가능해졌다. 

4. 나가며

이제 처음의 질문에 답을 해 보자. 인터넷이 청소년들의 자퇴와 가출을
유도하는가? 인터넷이 청소년을 자살하고 살인하게 만드는가? 인터넷의 차단이
청소년을 보호할 수 있을 것인가?
첫째, 청소년은 인터넷 때문에 자퇴하거나, 가출하거나, 자살하거나, 살인하는
것이 아니다. 인터넷은 미디어이다. 이 미디어는 사회를 반영하고 있다.
청소년들의 자퇴와, 가출과, 자살과, 살인에 대한 책임은 우리 사회에 있다.
우리가 지금 그 책임을 인터넷에 돌린다면 그것은 책임 회피일 뿐이다. 물론
미디어가 가지고 있는 사회적 효과는 언제나 강력하다. 그러나 이 미디어의 사회적
효과를 통제하기 위하여 지금 정부가 동원하고 있는 '청소년 유해론'은 인터넷을
기존의 공중파 방송과 같은 매체로 규정하고 이에 대한 정부의 통제 권한을
확보하기 위한 명분일 뿐이다.
둘째, 문제의 해결은, 고전적일 지라도, 멀리 보고 길게 가는 것이다. 청소년들의
미디어 오용에 대한 문제는 미디어에 대한 비판적 학습과 해석 능력(literacy)을
통해 접근해야 하고, 가장 중요한 것은 미디어 환경 자체를 공적인 영역과 사회적
토론의 대상에 포함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학교 컴퓨터 교육은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앞서가자"는 경쟁력 강화의 수단으로만 배치되어 기능적인
교육에 치우쳐 있다. 학교 인터넷은 과거 공기업이었던, 지금은 민영화된
한국통신에 학생들의 개인정보와 교환하는 조건으로 보급되었다. 학생들이 처음
접하는 인터넷은 이미 시장인 것이다. 그리고 정부는 학교교과과정에서는 논술
등을 통해 창의력과 사회비판능력을 신장시키겠다고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아이노스쿨]처럼 청소년들 스스로 자신의 문제를 토론하고, 학교 교육의 문제점에
대해 비판하는 사이트는 폐쇄시켰다. 공교육체계를 무너뜨리면서 학교로부터
청소년을 몰아낸 정권은 그들이 거리로 내몰아낸 청소년들이 서로를 격려하고
정보를 공유하기 위한 노력조차 짓밟으면서 이를 청소년 보호라 강변하고 있다.
아니다. 이것은 오히려 그들의 이중적인 청소년 보호 논리의 허구를 보여주고
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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