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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 1965
글쓴날 : 2001-10-31 09:47:35
글쓴이 : 로린마젤 조회 : 845
제목: 문화적 히스테리 징후 읽기/심광현/한겨레

기사섹션 : 시평 등록 2001.10.30(화) 22:24 

문화적 히스테리 징후 읽기/ 심광현


현재 우리 사회 전반이 그렇듯이 문화계에서도 날이 갈수록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늦게나마 영화가 21세기 문화의 `푸른 꽃'으로 각광받게 된 것은
다행이나, 반면 다른 장르들은 갈수록 위축되어 예술생태계의 파괴를 우려하는
소리가 높아가고 있다. 그런데 최근 한국영화의 외형적 `붐'과는 달리
영화계에서도 새로운 형태의 양극화가 확산되고 있다. 일부 제작사와 스타급 배우
몇 명에게만 고수익이 보장되는 반면 대다수의 스타들은 생활고에 허덕이면서
영상산업의 취약한 기반이 더 크게 흔들리고 있다. 영화의 유형면에서도 양극화의
심화로, <친구>, <신라의 달밤>, <조폭 마누라>로 이어지는 코믹 `깡패' 영화의
계보가 올해 극장가를 휩쓸면서, 다른 영화들은 완전히 맥을 못추고 있다. `깡패'
영화들이 수백만의 관객을 줄 세우며 스크린을 압도하는 동안 평단과 언론에서
수작으로 평가한 <고양이를 부탁해>와 <나비> 같은 영화들은 그 1%대에도 못 미쳐
황급히 막을 내리는 형편이다. 

80년대까지만 해도 사회적 부의 양극화에도 문화계에는 애당초 양극화될
`건더기'조차 없었기에 문화예술은 사회적 양극화에 저항하고 다른 삶의 가능성을
꿈꿀 수 있는 건강한 기능을 담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문화예술의 상품화의
확산과 그에 따른 문화계 내부에서의 20:80 현상의 심화로, 그런 기능 자체는
주변화되거나 배제되어가고 있다. 물론 사회 전반이 양극화되는 판에 문화적
양극화가 무슨 대수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올해 청년취업률은
아이엠에프 이후 최악의 상황이라고 한다. 그러나 문화적 양극화는 획일적인
문화적 히스테리라는 사회적 질환으로 확대재생산됨으로써 그에 `보복'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사회적 출구와 전망이 원천봉쇄된 젊은 세대에게 깡패들의 맹목적
의리와 우정이 유일한 탈출구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퇴행적 카타르시스가
대중들의 문화적 욕구를 지배한다는 것은 일종의 사회적 심근경색증이 도래하고
있음을 알리는 적신호가 아닐까? 

얼마전 친구를 잔인하게 살해한 부산의 한 고등학생이 <친구>를 40번이나 보고
영향을 받았다고 진술했다고 해서 논란이 일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그가
영화로부터 실제 영향을 받았는가 아닌가가 아니다. 오히려 영화에 대한 관객의
맹목적 반응이 사회적 질환의 한 징후임을 읽어낼 수 있는 사회적 진단능력의
유무가 문제이다. 문화와 예술은 요셉 보이스의 말처럼 “잠수함 속의 토끼”이며,
한 사회의 이상현상을 먼저 감지하게 해주는 건강한 경보 기능을 가지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부패와 비리의 바다' 속 깊이 가라 앉아 무감각해져 버린 우리
사회야말로 그 어느 때보다 “표현의 자유”를 확대함으로써 문화적 히스테리와
사회적 이상현상을 예민하게 감지해야 할 시급한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이에 대한 우리 사회의 진단은 오히려 역방향을 취하고 있다. 징후를 질병
자체로 오인하고 징후를 제거함으로써 되려 질병을 심화시키고 마는 오진이 여기
저기서 벌어지고 있다. 청소년보호를 빌미로 인터넷 규제를 강화하고 `미풍양속'을
빌미로 예술표현의 자유를 억제하려는 보수적 정책들이 그것이다. 그러나 징후를
제거하여 문제를 봉합하려는 것은 재난경보기를 제거하는 것만큼이나 위험천만한
것이다. 마치 헐리우드의 `테러영화'가 미국 사회의 내재적 질병의 악화를 알리는
문화적 히스테리였음을 징후적으로 독해할 능력을 상실한 결과 세계무역센터
대재난에 봉착했으면서도 아직도 자신들의 오진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미국처럼
말이다. 이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문화적 히스테리를 치유할 수 있는 문화적 다양성
제고를 위한 정책적 노력과 미디어 리터러시 해결을 위한 문화교육 확대를 위해
사회적 역량을 적극 투입해야 할 때이다. 

심광현/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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