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 : 10, Vote : 0, Date : 2001-10-29 17:53:15
Name : 조형진 Homepage : http://faure.kdlp.org
Subject : 지난 목요일 저녁의 명동성당
<상록수> 지난 목요일 저녁의 명동성당
지난 25일(목) 오후9시가 조금 넘은 시간, 평소 아는 분이 ‘인터넷 내용등급제
폐지를 위한 노상철야단식농성’을 하고 있다고 해 명동성당으로 발길을 옮겼다.
인터넷신문 대자보(http://www.jabo.co.kr)의 발행인인 그 분은 60일간 많은
활동가들이 릴레이로 24시간 동안 돌아가며 하는 단식농성의 네번째 주자였다.
명동성당은 밤시간이라서 그런지 아주 조용했다. 그 분은 명동성당 들머리 쪽
스티로폼 위에 혼자 앉아계셨다. 옆에는 인터넷 내용등급제를 반대하는 가위표시의
피켓과 ‘정통부장관 퇴진하라’고 외치는 피켓들, 물과 침낭이 놓여있었다.
인사를 하고 나도 스티로폼 위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정보통신윤리위원회는 김인규 교사의 홈페이지, 동성애자 홈페이지를
청소년유해매체물이라고 판단하고 폐쇄하는 등 많은 논란를 일으켜왔다. 또
11월1일(목)부터는 청소년 보호를 목적으로 인터넷 내용등급제를 실시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 인터넷 내용등급제의 본격적인 실시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이번 농성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었다.
한 때 사람들은 새로운 것들이 가능한 온라인 사회가 오프라인 사회의 대안이 될
수도 있다는 기대를 걸었다. 그리고 커서와 마우스, 사이트를 통해 연결되는 수
많은 정보들과 새로운 사람들도 그 기대들 중 하나였다. 그러나 그 기대는 지금
오프라인과 다를바 없는 또 다른 권력과 문제들에 의해 하나둘씩 무너지고 있다.
오히려 온라인에서의 규제는 참 간단하다. ‘유해’라는 딱지와 ‘사이트
폐쇄’라는 도장만 있으면 되니 말이다. 동성애자 사이트, 자퇴생들의 모임 등을
폐쇄한 것만을 보더라도 그 ‘유해’라는 것이 얼마나 많은 편견과 비뚤어진
시선으로 찍은 도장인지 잘 알 수 있다. ‘저 사람들은 유해하니까 근처에 가지도,
보지도 말라’며 사람들의 눈을 대신 가려준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통부에서 인터넷이라는 가상의 공간을 이리저리 나누며 벽을 세우고 있을
때, 명동성당 들머리의 농성은 세상과 그 어떤 막도 치지 않은 채 이뤄지고
있었다.
제법 쌀쌀한 밤, 명동성당 주변에는 여러 사람들이 있었다. 계속 가래침을 뱉으며
명동성당 주변을 배회하는 정신이상자, 말쑥하게 양복을 입고 아무에게나 슬쩍
말을 거는 아저씨, 손 꼭 잡고 데이트를 즐기는 연인, 두 손 모으고 성당으로
들어가는 수녀님.
사람들 사이에 규제라는 이름의 장벽만 늘어가는 온라인 사회와 이에 항의하기
위해 사방에 벽 하나 없는 곳에서 24시간 지나가는 사람들과 얼굴을 맞대고 있는
오프라인 사회. 지난 목요일 여러 사람들이 함께 있었던 명동성당 들머리에는 그
어떤 막도, 그 어떤 벽도 없었다. 그리고 ‘인터넷 내용등급제 폐지’를 외치는
소리와 아저씨의 침 뱉는 소리, 수녀님의 기도소리는 같은 공간을 만들고 있었다.
안인용 기자(djiz@ewha.ac.kr)
* 이 기사는 이대학보 10월 29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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