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열에 대한 단상
안상운(민변 언론위원회 위원)
최근 민변 홈페이지에도 언론에 대한 '사전검열'의 글이 올라 있다.
이는 지난 7월말 서울지방법원남부지원이 아가동산 김기순씨가 SBS의 <그것이
알고싶다> 프로그램에 대해 제기한 방영금지가처분신청을 인용한 이후 언론계에서
'사법부에 의한 언론검열'의 문제를 공론화시킨 결과물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필자는 '법원'의 방영금지가처분결정이 언론보도 피해자의 사법구제를 위한
유효적절한 제도로서 합헌이냐 아니면 이 역시 행정권에 의한 사전검열과
마찬가지로 우리 헌법 제21조 제2항이 금지하고 있는 사전검열에 해당하느냐
여부는 굳이 논하고 싶지 않다.
그 이유는 필자가 당해 사건의 신청인측 대리인이었을 뿐 아니라 헌법재판소가
이미 2001. 8. 30. 2000헌바36 결정에서 "제21조 제2항에서 금지하고 있는
검열이란 모든 형태의 사전적인 규제를 금지하는 것이 아니고, 단지 의사표현의
발표 여부가 오로지 행정권의 허가에 달려있는 사전심사만을 금지하는 것을
뜻하는데, 인격권 침해에 대한 실효성 있는 구제를 위하여서는 이미 발생하여
지속하는 침해행위의 정지·제거, 즉 방해배제청구와 함께 침해의 사전억제,
방해예방청구가 허용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할 것이며, 이에 가처분에 의한
사전금지청구는 인격권 보호라는 목적에 있어서 그 정당성이 인정될 뿐 아니라
보호수단으로서도 적정하므로 민사소송법 제714조 제2항은 헌법에 위반되지
아니한다"고 판시하여 법적 논쟁을 일단락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우리사회에서 '검열'의 담론이 종식된 것은 아니다.
이제는 '국가권력의 언론에 대한 검열' 보다도 오히려 '언론의 국가권력에 대한
검열' 현상이나 상대적 강자집단의 상대적 약자집단에 대한 검열의 문제에 더
주목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박승관 교수와 같은 대학 사회학과 장경섭 교수의 공저인
『언론권력과 의제동학』(커뮤니케이션북스, 2001년)에 의하면 한국 언론의
'권력국가화 현상'이 더 심해지고 있다면서 한국 언론은 자신의 권력을 강화해
오면서 전통적으로 국가에 의하여 독점적이고 배타적으로 수행되어 오던 기능이나
역할을 이제는 자기 자신의 것으로 동화해 내면서 국가 기관의 기능을 모방하거나
심지어는 이를 참칭 또는 대체해 가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지난 수십 년간 권위주의 군사 정권이 보여 주었던 폭력성과 비민주성,
그리고 부정 부패와 정경 유착에 의하여 국가의 공신력과 지도력이 현저히
약화되고 국가 기관들이 권위를 상실하게 되었고, 반면 국가의 대척점에 서 있는
시민 사회 역시 이러한 붕괴된 권위를 대체하고 보완할 수 있는 조직화된 지도력과
권위를 충분히 형성할 수 없는 상황 즉, 국가의 권위가 실추되고 그렇다고 해서
시민 주도의 대안적 지도력 형성도 이루어 내지 못한 한국 사회에서 권위주의적
정치 체제가 민주주의적 정치 체제로 전환되면서 국가와 사회 전반의 권위와
지도력이 동시에 결여되는 이른바 '권위의 공백(vaccum of authority)'이 발생하게
되었는데 이를 틈타 한국 언론의 권력화, 언론의 '유사 국가 기관화'가
발생하였다는 것이다.
그 결과 권위주의 정치 체제 하에서 한국 언론이 가졌던 가장 중대하고 고질적인
문제가 '국가에 의한 언론의 검열'이었다면, 오늘날 민주주의적 정치 변동을
경험하고 난 이후의 국면에서 한국 언론이 새롭게 당면하고 있는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언론에 의한 국가의 검열'이라는 것이다. 권위주의적 정치질서 아래에서
횡행하였던 '언론에 대한 검열'이 새롭게 전개되는 민주주의적 정치 변동
과정에서는 '언론에 의한 검열'로 전환, 역전되는 양상이야말로 한국 언론
현실에서 나타나고 있는 가장 중요하고도 두드러진 문제점이라는 주장이다.
가령 하나의 사회 문제나 사건이 발생했을 때, 한국 언론의 역할은 단순히 그것과
관련된 문제의 제기나 비리의 고발에서 그치지 아니하고, 해당 문제가 어떻게
해결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처방 및 정책 방향을 주도적으로 설정할 뿐 아니라,
심지어 사건 전반에 대한 해석, 다루어져야 할 사안의 우선 순위, 법적 처벌의
강도에 대해서까지도 적극적으로 발언하고 있으며 나아가, 일부 탐사 보도에서
발견되듯이, 언론이 '고발자', '환경감시자', 혹은 '보도자'의 위치에 소극적으로
머무르지 않고 직접 '수사'에 착수하거나 수사 과정에 갖가지의 방식으로 개입하는
양상이 심화되고 있어서, 이러한 현상은 한국 언론이 '법률적인(de jure)'
수사권은 지니고 있지 않으면서도 '사실상의(de facto)' 수사에 상당 부분
개입하여 적지 않은 영향력과 발언권을 행사하고 있음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한국 언론은 또한 해당 사건의 마무리 단계에서도 일정 정도의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여러 가지 방식으로 개입하고 있다는 의혹을 사고 있는데 이처럼 한국
언론은 법적으로 국가기관에 의하여 독점되어 있는 사법적 기능을 일정 부분 자기
자신의 기능으로 흡수함으로써 유사 사법기관적 역할을 적극 수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한국 언론의 초국가적 권력 신장이 가지고 있는 가장 본질적인 문제 중
하나는 언론이 이러한 복합적 기능들을 수행할 수 있도록 국민으로부터 합법적
권한을 위임받은 바 없는 일개의 사설 기관에 불과하며, 또한 국정의 주요 영역에
대하여 정책을 입안하고 이를 평가할 지위와 능력을 갖춘 정책 기관이나 전문
기관이라고 보기도 어렵고, 이러한 기능 수행의 결과에 관하여 평가받는
책임기관도 아니라는 데 있는데 이렇듯 합법적으로 위임받은 바 없는 한국 언론이
강력한 초국가적 권력을 행사하면서도 실질적으로 어느 누구에 대해서도 책임지지
않으며, 어느 누구로부터도 감시 혹은 견제받지 않고 있다는 점은 매우 놀랍고도
의미심장한 일이라는 진단이다.
그렇다면 이제 한국 사회는 고전적인 의미의 검열('국가권력의 언론에 대한 검열')
보다도 오히려 한국적 현실에서의 검열('언론의 국가권력에 대한 검열') 현상에
능동적으로 대처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하나의 사례를 살펴보자.
최근 울산인권영화제에 출품된 영화 <밥/꽃/양>이 주최측에 의해 '사전검열'을
받고 그 상영이 불허되었다.
"표현의 자유 보장이란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해 추구하는 본질적인
권리"이며, "차이를 인정하고 수용하는 사회, 약자들의 목소리가 주장되고
전달되는 사회를 이루기 위해 인권영화제의 '표현의 자유를 위한 투쟁'은 언제나
현재의 과제"임을 표방한 울산인권영화제에서, 사회적 소수자들의 표현을 위한
행사에서, 또 다시 상대적 소수자들에 대한 검열과 통제가 자행되었다는 점에서 더
큰 충격을 주고 있다.
문제가 된 작품인 <밥/꽃/양>은 지난 98년 울산 현대자동차 노조의 투쟁 과정에서
소외받고 배제된 사람들의 이야기이자, 운동 사회에서조차 또 다시 소외되고
배제되어 온 여성노동자(식당 아줌마)들의 이중적 억압에 대한 문제의식을 담고
있는 작품이라고 하는데 그런 면에서 문화개혁시민연대가 적절히 지적하였듯이
<밥/꽃/양>에 대한 울산인권영화제의 검열 행위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침해는
물론이고, 철저히 정규직 남성 노동자의 이데올로기와 권력에 근거한 운동사회내의
또 다른 자기 검열과 폭력임이 분명하다.
또 다른 사례를 보면, 지난 10월 초순 SBS는 KBS의 <태조 왕건> 프로그램에 대해
방송금지가처분신청을 법원에 제기했다고 한다.
바로 얼마 전, 아가동산 김기순씨가 SBS를 상대로 제기한 방영금지가처분이
인용되자,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는 사전검열이라면서 난리(?)를 치며,
헌법재판소의 합헌결정문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재차 헌재에 위헌소원까지
제기해 놓은 SBS가 이제 와서는 KBS를 상대로 방송금지가처분을 신청한 것이다.
그런데 SBS의 이러한 모순된 행태를 취재보도하는 '용기있는' 매체는 찾아볼 수가
없다.
헌재에서 합헌결정이 내려져서 이를 존중한다는 의미인지 아니면 SBS든 KBS든 우리
편도 아니고 적도 아니기 때문에 굳이 어느 쪽을 편들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우리가 진정 관심을 갖고 대처해야 할 검열의 의미에 대한 성찰이 필요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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